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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부부 (엄마의 존재, 부부갈등, 소통)

by eunhaji 2026. 4. 24.

 

진주가 과거로 돌아가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계신 저인데도 그랬습니다. 진주의 울음이 묵직한 감정을 일으켰고 가슴 한쪽에서 죄책감이 갑자기 올라왔습니다. 이 드라마는 내가 누구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엄마의 존재

타임슬립(Time Slip)이란 극 중 인물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나 미래로 이동하는 서사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아보는 설정인데, 이 드라마는 그 장치를 단순한 흥미 요소로 쓰지 않았습니다. 진주가 20살로 돌아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잃어버린 엄마였다는 것, 그 선택 자체가 이미 메시지였습니다.

"엄마, 나도 데려가." 이 대사 하나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울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진주는 이혼도 하고 삶이 엉망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 엄마 생각을 합니다. 잘 살아보려 했는데 왜 이렇게 됐냐고. 저도 그 장면에서 제가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게 언제였는지 떠올렸습니다. 이 글을 쓰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는 데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하루의 행복을 선물해 드리기 위해 실천하려 합니다.

실제로 가족 간 정서적 유대감과 부모 자녀 관계의 질은 개인의 심리적 안녕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드라마가 픽션이어도 이 감정은 픽션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진주 엄마가 떠나기 전 남긴 말, "네 아빠 나 없으면 어떻게 살겠니"는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조용히 가족을 지탱해 왔는지 느끼게 했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우리 엄마가 매일 아침 차려놓는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부부갈등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최반도의 대사였습니다.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데, 죽어라 노력했는데, 잘 살아보려고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왜 맨날 죄송하고 미안하고."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면서 가슴이 무거워지며 답답하고 절벽 끝에 서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이런 기분 압니다. 일 마치고 들어와서 아이들 숙제 봐주고 설거지하고 나면 몸이 바닥이 납니다. 그 상태에서 남편이 소파에 누워 있으면 그 순간 올라오는 감정은 이성이 아니라 날 선 말로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여기서 남편도 저에게 큰소리 냈다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을 텐데 남편은 감사하게도 미안하다고 얘기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으니 알려주면 앞으로 본인이 하겠다고 말해주는 남편에게 지혜로움을 느끼며 한없이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부부갈등을 다루는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를 감정적 반응성(Emotional Reactivity)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감정적 반응성이란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성적 판단보다 즉각적인 감정이 먼저 행동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부부 갈등의 상당수는 이 감정적 반응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드라마 속 반도와 진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 다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너무 지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임을 느낍니다.

이 드라마가 잘한 것은 갈등의 원인을 어느 한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진주도 반도도 저마다의 상처와 사정이 있었고, 그게 쌓이면서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어쩌면 많은 부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여기서 보았을 것입니다.

소통

진주와 반도는 과거에서 다시 만나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는 순간 관계가 달라집니다. 그 진심을 보여주는 방법이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너처럼 장모님 보고 싶었다고"라는 한 마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저도 남편에게 소리 지르기 전에 부드러운 말투로 나의 힘듦을 공유하고 제안을 했다면 감정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부 상담이나 가족심리치료 분야에서 소통 부재를 다룰 때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메타커뮤니케이션(Meta-communication)입니다. 여기서 메타커뮤니케이션이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 우리 대화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먼저 말을 꺼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실제 커플 상담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입니다.

이 드라마가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확장되지 못한 점은 아쉬웠습니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안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현실의 부부들에게는 부부 상담이나 가족심리치료 같은 전문적인 개입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보니 한국 부부의 이혼율은 혼인 건수 대비 꾸준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결혼 5년 이내 초기 갈등이 장기적인 관계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드라마를 보고 웃고 울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반도가 "늘 진심이었는데 다 엉망진창이야"라고 말할 때, 저는 그 처절한 진심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밖에서 남들에게 굽신거리며 자존심 다 버리고 버텨온 이유가 결국 가족이었을 텐데, 집에 돌아오면 그 피로감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향하는 아이러니. 그게 이 드라마가 건드린 진짜 지점이었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편하다는 이유로, 가장 솔직하게 날 선 감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이걸 나쁜 것으로 단죄하지 않고 그냥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그게 이 드라마가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관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진심이 말로 전달되지 못한 채 쌓이고 있는지 다시 보게 됐습니다. 혹시 이 드라마를 보셨다면, 오늘 하루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보시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한 마디가 관계의 온도를 바꿉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남편에게 "요즘 고생 많다"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쓰고 난 뒤 엄마에게도 전화를 하려 합니다. 이 드라마가 저에게 준 선물은 그 두 통의 전화였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QOFLQMFhHg&t=1663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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