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의 무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묵직했던 이유는 극 중 인물들이 안고 사는 아픔이 결코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크고 작은 균열을 겪곤 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며 연세 드신 부모님을 함께 살피다 보니 삶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직장 생활이나 여러 모임 속에서도 겉으로는 환하게 웃고 있지만 저마다 말 못 할 사정과 마음의 깊은 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작은 실수에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이미 지나간 일에 매여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는 붕괴 사고라는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슬픔 그리고 어떻게든 오늘을 버텨내려는 몸부림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극 이후의 삶을 담담하게 조명한 연출은 자극적인 전개에 치우치지 않고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상처를 포장하거나 급하게 치유하려 들지 않고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가만히 곁을 지켜주는 방식이 가슴 깊은 위로를 건넸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작은 흉터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기에 그들의 고통과 방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서주원이라면
서주원은 사고 현장을 설계했던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죄책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만약 제가 그 입장이었다면 저 역시 그와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가족이 지닌 허물이나 문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온전히 내 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나 아이들을 키우며 생기는 예상치 못한 불상사들을 모두 내 책임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완벽하게 수습하려 애쓰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큰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던 날 같은 반 친구 한명의 팔을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연고와 밴드 그리고 편지를 준비하여 물린아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야 죄송한마음과 함께 1년동안 함께 지낼 친구의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살짜리 아이가 미안해 말을 하지 못하다 보니 제가 온전히 받았습니다. 나 하나만 더 노력하고 참으면 모두가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매섭게 채찍질하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서주원이 보여준 끝없는 중압감과 책임감에 깊이 공감하는 한편 안타까운 마음도 매우 컸습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과오까지 온전히 짊어지고 스스로를 가두는 모습은 드라마적 장치로서 이해되면서도 때로는 지나치게 가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우리 역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타인의 짐을 내 것처럼 짊어지고 스스로 괴로워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책임감은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짊어질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서주원이 조금 더 일찍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문수라면
하문수는 사고로 동생을 잃고 트라우마와 기억 상실 어머니를 향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만약 제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당장 완벽히 이겨낼 수는 없었겠지만 그 아픔을 마냥 피하려고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거대한 상처와 죄책감을 평생의 무거운 짐으로만 끌어안고 살기보다는 긴 인생의 여정에서 거쳐 가는 하나의 점이라고 받아들이려 애썼을 것입니다. 살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불행들은 삶 전체를 덮어버릴 것처럼 굴지만 결국 그것 또한 흘러가는 시간 속 일부일 뿐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뜻밖의 사고나 힘든 일로 가슴을 졸일 때가 많고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죄송함과 후회가 남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지나간 일에 매여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그것을 삶의 한 조각으로 인정하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남겨진 이의 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드라마 속 하문수가 상처를 마주하며 조금씩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과정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지만 지나치게 인내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모습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픔을 굳이 거창하게 극복하려 애쓰지 않더라도 단지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현실의 비극을 다루는 가장 건강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날이 길지만 짧은 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훨씬 더 갚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