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도 때에 저는 대기업 서류에서 여러 번 떨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학벌이 특별하지 않고 자격증도 몇 개 없으니, 서류 통과부터가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연히 오랜만에 드라마 김 과장을 보다가 김성룡 과장처럼 스펙 없이도 실력 하나로 대기업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분야만 잘해도 취업이 잘 되는 것과 동시에 여러 다방면으로 나에 대한 스펙을 잘 쌓아 어디에 들어가도 성장할 수 있는 것과 무엇이 더 현실에 맞고 옳은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블라인드 채용
대기업에 여러 번 떨어지고 중소기업에 들어갈 때 가장 어필한 건 책임감이었습니다. 면접관이 "자신의 강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저는 화려한 스펙 대신 "맡은 일은 반드시 끝냅니다"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 대답이 면접관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채용됐고, 지금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책임감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을 합니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출신 학교, 학점, 어학 점수 등 스펙 정보를 배제하고 직무 능력과 면접만으로 평가하는 채용 방식입니다. 2017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의무화가 시행됐고, 이제 민간 기업으로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공기관에서 지역 인재와 비수도권 출신 합격자 비율이 이전보다 유의미하게 상승했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드라마 김 과장이 보여주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김성룡은 숫자 뒤에 숨겨진 돈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읽어냅니다. 이를 회계 업계 용어로 표현하면 분식회계 탐지 역량, 즉 재무제표 상의 허위 기재나 과대 계상 항목을 실질 거래 내역과 대조해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분식회계(window dressing)란 기업이 실제보다 재무 상태를 좋게 보이도록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능력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와 전혀 무관합니다. 김과장이 가장 잘하는 분야는 한마디로 회계의 허점을 이용한 자금 관리와 문제해결능력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단련된 경력이 대기업에서 실력을 들어냅니다. 기업의 채용의 조건 중 하나가 경력직이냐 신입이냐를 뽑는 기준이 있습니다. 경력직을 원하는 회사는 김 과장같이 바로 투입되어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신입이나 경력무관은 들어와서 배워가며 차차 일을 하며 인재를 키우는 것입니다. 경력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기업마다 원하는 인재는 다 다르며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 지원하면 됩니다. 블라인드 채용을 적극 이용하면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 되는 역량을 찾아보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본다면 원하는 곳에 채용될 수 있습니다.
균형 있는 채용
저의 스펙은 세상의 기준으로 남들보다는 부족한 것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단점들 때문에 제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가르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인서울은 해야 선택지가 넓어진다"라고 말하고 있었고 이게 솔직한 현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김 과장이 보여준 것은 좋은 학점보다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래 성과를 예측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성을 높인다는 취지는 분명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역차별일 수도 있겠다 생각도 조심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학점이나 어학 점수를 위해 수년간 투자한 노력 자체도 분명히 그 사람의 성실함과 목표 지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스펙을 단순히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그 스펙 하나를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는 해본 사람만 압니다. 이런 점에서 블라인드 채용과 전통적인 스펙 기반 채용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방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도 가솔린과 전기 사이에 하이브리드가 있듯이 채용에도 분명 좋은 방법으로 많은 인재들을 적절히 채용하여 배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무기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김성룡 과장을 통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김 과장이 분식회계 조작 흔적을 재고 실사와 유령 법인 추적만으로 파헤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보고서 작성 능력이 뛰어나거나 외국어가 유창한 게 아닙니다. 다만 숫자를 보는 감각, 현금 흐름과 계정과목 간의 불일치를 즉각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제가 요즘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시키는데 스펙을 쌓으라고 몰아붙이기보다, 아이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 눈이 반짝이는지 발견하는 경험을 주고 싶습니다. 부모 역할이 아이의 성향을 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혹시 키자니아라는 곳을 아십니까? 어린아이들이 여러 직업을 즐겁게 놀면서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도 아이들을 부산에 있는 키자니아로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미리 스케줄을 짜지 않으면 시간 내에 많은 직업을 체험할 수 없기에 부모님이 함께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희 아이들은 햄버거 만드는 곳부터 시작해서 의사, 탐정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면서 키조라는 화폐를 벌기도 하고 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돈을 융통하는 것까지 배울 수 있어서 경제흐름까지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거기에 아이들 통장에 키조를 저금시켜 놨기 때문에 다시 한번 데려가서 직업체험 하러 갈 예정입니다. 제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은 완벽한 사람으로 크면 너무 좋겠지만 저 또한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욕심은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면서 본인들이 잘하는 분야를 일찍이 발견하여 한길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인생을 바르게 살았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결론을 맺자면 취업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대체 불가능한 역량입니다. 그게 회계든, 영업이든, 기술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가 과장된 설정 위에서도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꽤 현실적입니다. 하나를 제대로 잘하는 사람이 결국 어디서든 살아남는다는 것. 저도 지금 그 하나를 계속 찾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