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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피엔드 (양극성장애, 해피엔드, 정신질환)

by eunhaji 2026. 3. 30.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을 다루는 드라마는 무겁고 답답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저 또한 나의 해피엔드를 보면서 주인공 서재원에게 답답하였지만 양극성장애를 앓으면서도 가족과 회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재원 혼자만이 아닌 주변 서재원을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는 모습에서 저희 할머니가 치매로 고생하실 때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헌신과 겹쳐지면서,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의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양극성장애 그리고 복수

드라마 속 서재원은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극성장애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뜨는 조증 상태와 우울한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을 의미합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일반적으로 조울증은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약물 치료와 상담이 필수적인 뇌 질환입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양극성장애를 가진 사람이 회사생활은 할 수 있지만 CEO의 단계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서재원의 증상이 조증과 우울증 뿐만이 아니라 환청과 환시를 경험하고, 기억이 단절되는 해리성 기억장애와 강한 불안과 집착이 있다는 것입니다. 7년 전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친구 '조수경'과 대화하는 장면이 반복되기도 하는 여러 가지 증상이 섞인 설정이 드라마의 극적인 전개를 위한 거라 하지만 회사 CEO로서 불안전한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현실에서는 회사경영을 맡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할머니도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시거나, 가족을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할머니의 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면서 끝까지 곁을 지키셨습니다. 드라마 속 서재원도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정신질환은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으며, 가족과 주변의 이해가 필수라는 점을 이 드라마는 정확히 보여줍니다.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은 서재원의 복수입니다. 그녀는 남편 허순영과 절친 권윤진의 배신을 알게 되고, 치밀한 계획으로 그들을 파멸시킵니다. 일반적으로 복수극은 통쾌함을 주지만, '나의 해피엔드'는 복수 과정에서 재원이 얼마나 망가지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재원은 증상이 악화되고, 환각 속 친구와 대화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잃어갑니다.

재원의 친구 권윤진은 재원을 향한 열등감과 질투로 점점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녀는 장학재단 이사장인 아버지 권영익과 함께 회사직원 백승규를 이용해 재원을 괴롭히고, 결국 순영까지 살해합니다. 하지만 재원은 끝까지 증거를 모으고, 윤진과 영익을 법의 심판대에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재원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라며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아쉬웠던 점은, 서재원이 아린의 출생 배경을 알게 된 후 감정 변화가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실에서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단순히 '사랑'으로 극복하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입니다. 드라마는 재원이 아린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만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겪었을 내적 갈등과 트라우마를 좀 더 세밀하게 다뤘다면 더 현실적인 공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수는 완성됐지만, 진짜 용서와 치유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점을 더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만든 해피엔드

드라마 마지막 장면은 서재원, 아버지 서창석, 딸 아린이 세 사람이 함께 웃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 가족 구성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일반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창석은 재원의 친아버지가 아니고, 아린은 성폭력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출생 배경은 드라마에서도 비극적으로 다뤄지기 마련인데, '나의 해피엔드'는 오히려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진짜 가족이 아니어도 진짜 가족 그 이상으로 서로 사랑해 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일찍 집을 나가신 후 혼자 5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나이 드신 할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않자, 할머니는 결국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할머니를 끝까지 보살피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곁을 지키셨습니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단 한 명이라도 책임지고 사랑하는 모습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창석은 재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담보가 없다고 비정상인들한테 자식을 맡기는 여자가 제정신이야."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비정상'일지 몰라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사랑의 형태는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현실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의 편견도 정면으로 다룹니다. 재원은 법정에서 자신의 병을 고백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유병률이 3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세 명 중 한 사람은 정신질환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정신질환 유병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2025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은 '나약함'이나 '의지 부족'으로 치부되며, 치료를 받는 것조차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머니의 치매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점도 이와 비슷합니다. 주변에서는 "나이 드시면 다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실제로 가족이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셨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힘드셨을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신질환은 환자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나이에 상관없이 정신질환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숨기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움직이는 추세입니다.

드라마는 재원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결국 환각 속 친구와 작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정신질환도 적절한 치료와 주변의 지지가 있다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재원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의 해피엔딩은 없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 난 그저 반복되는 하루를 잘 살아내면 되는 거겠지.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의 해피엔드'는 정신질환, 가족, 복수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국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드라마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가족,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 관계라도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해피엔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오래 남습니다. 저 역시 할머니를 돌보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족이란 결국 서로를 끌어안고 함께 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진짜 이해와 지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0MZ-Gf2jW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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