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부모가정 비율이 전체 가구의 10%를 넘어섰습니다(출처: 통계청).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생각보다 많다 싶었습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치다 보니 어느새 그게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드라마 <남남>을 보면서 그 숫자 뒤에 담긴 이야기들이 생각났습니다. 철없어 보이는 엄마와 세상 쿨한 딸이 부딪히며 만들어 가는 관계. 공감과 감동을 준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한부모 가정
제 친한 친구 동생은 아이가 돌이 막 지났을 때 아내와 사별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이라 주변 모두가 안타까워했고, 저도 함께 많이 울었습니다. 5년이 지나 다시 연애를 시작했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상대방 부모님이 아이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던 겁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드라마 속 은미와 진희 모녀도 비슷한 무게를 안고 삽니다. 은미는 고등학생 때 원치 않게 임신을 하고 혼자 진희를 키웠습니다. 겉으로는 철없고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딸 편에 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한부모가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공동 의존적 애착(Anxious Attachment) 패턴입니다. 여기서 공동 의존적 애착이란 양육자와 자녀 사이에 정서적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서로가 서로의 감정 조절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진희가 경찰이 된 이유가 이 구조를 잘 보여 줍니다. 어린 시절부터 철없고 사고뭉치인 엄마를 지켜보며 세상의 편견이나 위험으로부터 직접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이에 따라 경찰이 된 것입니다. 현실에서도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어른 역할'을 일찍 떠맡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제 친구 동생의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 엄마를 더 이상 찾지 않고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며 의존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떼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아버렸고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는 아이다울 때가 가장 사랑스러운데 어른아이를 볼 때면 어른으로서 가슴이 아파오기도 합니다.
어른 아이
진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은미와의 관계는 계속 긴장감이 있습니다. 엄마는 딸의 외박에 이를 갈고, 딸은 독립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가 버럭 합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장면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제 통제 안에 있으니 괜찮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금 방식 그대로 접근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기겠다 싶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진희가 "엄마가 울면 내가 얼마나 겁나고 무서웠는지 알아?"라고 터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모로서 마음이 아픈 장면이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진희가 유일한 울타리였던 엄마가 울거나 흔들리는 모습은 어린 진희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공포를 주었고, 자신이 기댈 곳이 사라진다는 압박감을 느꼈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남들처럼 어리광을 피우거나 울기보다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기에 전전긍긍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진희가 얼마나 힘겨웠을지 엄마의 시선으로 보니 안아주고 싶었던 모습이었습니다. 모녀가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함을 느낍니다. 사실 어른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어린 진희가 자신의 책임으로 느껴진 것은 정서적 분리가 안되었다고 보입니다. 힘듦을 공감하되 부모와 아이가 각자 해야 할 일을 잘 정리하고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하겠고 존중해줘야 하는 관계로 봐야 합니다. 때로는 따로, 때로는 함께 해 나아간다면 두 사람 모두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에서 진희가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진홍에게 "저한테 신경 꺼 주시고, 엄마랑 썸타는 새로운 남자 역할만 잘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감정적으로 끓어오르면서도 선을 그을 줄 아는 이 모습이 건강한 분화(Differentiation)에 가깝습니다. 분화란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명확히 구분하고, 관계 속에서도 독립적 자아를 유지하는 심리적 능력입니다.
엄마의 마음
드라마가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진홍이는 보수적인 집안의 반대로 임신한 은미를 혼자 두고 떠났었다가 30년 후 갑작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때는 집안의 거센 반대와 통제를 이겨낼 만큼 용기와 힘이 부족했던 것이고 지금은 미안함과 죄책감에 다시 은미를 찾아온 장면이 솔직히 좀 기분이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은미는 그를 다시 한번 용서하고 받아줍니다. 은미의 성격을 보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다른 시선으로 보이게 됩니다. 진희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선물해 준 것 같이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린 진희가 짊어진 보호자의 짐을 덜어주려는 마음과 아빠의 부재로 인한 그 틈을 메워주고 싶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진희였기에 결국 진홍이를 받아준 것 같습니다. 은미가 진희에게 진한 사랑을 보여준 장면이 있습니다. 은미가 진희에게 "나 부탁이 있어. 내가 죽었을 때 울지 마"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말은 거칠어도 그 안에 담긴 건 딸이 슬퍼하는 게 자신도 감당 못할 것 같다는 절절한 사랑으로 보입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결국 모든 엄마들이 갖고 있는 감사의 무게가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일은 결국 아이들을 잘 떠나보내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저도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의 관계가 언젠가 진희와 은미처럼 되지 않도록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경계선을 만들어 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이 드라마가 다시 한번 일깨워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