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김은숙 작가의 '다 이루어질지니'를 보기 전까지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우리에게 어떻게 공감을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물이 어떻게 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탄과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인간의 선함을 증명하는지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제게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이코패스 기가영, 그리고 램프의 지니
드라마에서 기가영은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를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ASPD란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정신의학적 진단명을 의미합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이들은 공감능력 결핍으로 인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의 가영이는 현실판 사이코패스와는 다르게 표현되지만 일반 사람들과도 다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개구리를 해부하고 앵무새를 죽이는 등의 행동을 하였고 이는 할머니 이판금과 동네 어른들의 사랑으로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학습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옛 어른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옛날 어르신들의 깊은 정이 그리운 장면입니다.
작가는 가영을 통해 공감이 없어도 이성적 판단과 학습된 원칙으로 도덕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지만 저는 이것이 드라마적 미화라고 봅니다. 실제 임상 연구에 따르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의 70% 이상이 충동적 범죄를 저지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가영이처럼 계산된 선택으로 타인을 돕는 사이코패스는 극히 드문 사례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를 통해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착한 행동은 반드시 착한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가? 가영이는 감정이 아닌 상황 판단과 계산으로 왕따 채민지를 도왔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소원을 유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블리스는 신에게 대항했다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벌을 받은 사탄입니다. 여기서 지니(Jinn)란 이슬람 문화권에서 전해지는 초자연적 존재로, 인간과 천사 사이의 중간적 영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드라마는 이 아라비아 신화를 한국적 정서와 결합시켜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983년 전 고려 시대, 어린 소녀는 죽어가면서도 세 가지 소원 모두를 타인을 위해 빌었고, 이블리스는 처음으로 순수한 인간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보며 어린아이의 순수한 선함을 느낍니다. 나를 위해 사용할 법한 소원을 어린아이는 타인을 위해 씁니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감정으로 인간은 사실 성선설에 가까운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가영이는 공감능력 부족 덕분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하였고 명문대에 수석 입학까지 하게 되었고 이후 뛰어난 판단력으로 주식 200억을 벌었습니다. 순간 고등학교 친구가 떠올랐는데 그 친구는 사이코패스가 아니었지만 친구와 거리를 두며 자신의 목표에 집중했고, 그 결과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한 목표에 도달하려면 한 가지는 내려놓고 몰두해야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보다 친구가 더 중요한 시간들을 보냈고 좋은 대학을 가진 못했지만 그 추억들은 아직까지 소중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전 공부보단 친구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이블리스가 소녀의 유골 한 줌을 모래시계에 넣고 983년간 기다린 장면은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지만 제가 느꼈던 것은 집착과 사랑의 경계에 있는 감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소녀가 배골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짜 슬픔을 느꼈고, 20년간의 기억을 잃으면서까지 그녀를 다시 만나길 원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이블리스의 램프 안 벽에 적힌 수많은 '하비비(내 사랑)'라는 글자였습니다. 가영의 눈에만 보이는 이 글자들은 983년간의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소원과 타락, 인간 본성에 대한 실험
가영과 이블리스는 내기를 합니다. 길에서 마주친 다섯 생명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중 세 명이 타락한다면 가영이 죽고, 그렇지 않다면 이블리스가 패배하는 겁니다. 이 설정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첫 번째 소원자 강림선은 20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무시당했던 인물입니다. 지점장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지만, 정당하지 않게 올라간 자리는 그녀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고 가족과의 관계만 망쳤습니다.
두 번째 소원자 구보경은 가영의 학교 동창으로, 가영이의 통장에 있는 200억을 질투심에 모두 자신에게 달라고 빌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제 경험과 비교하게 됐는데, 대학교를 겨우 입학한 저와 달리 서울 소재 대학에 간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약간의 질투를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노력의 결과였기에 진심으로 축하하였습니다. 구보경도 마지막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돈을 돌려줬습니다. 다른 한 명은 범죄자 엄상태로 과거로 돌아가 증거를 완벽하게 없애려는 사람이었으며, 한 명은 강아지였는데 주인을 만나기 위해 사람으로 되었다가 개로 다시 돌아가는 소원을 빌었고, 다른 한명은 고영현으로 욕망의 소원 두 개를 쓰고 마지막엔 장인어른을 살리는 의로운 선택을 합니다. 최종적으로 세 명이 타락하지 않았고 내기는 가영이가 이기게 됩니다.
공감 없는 도덕성, 가능한가
드라마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이겁니다. 공감 없이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저는 개인적으로는 착한 행동은 가능하지만 진정한 선함은 공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가영이는 이성과 계산으로 도덕적 선택을 했습니다. 할머니가 정한 규칙을 지켰고, 범죄자를 잡았으며, 실종자를 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 번째 소원으로 "딱 하루만 인간의 감정을 갖게 해 달라"라고 빌었을 때,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습니다. 감정을 느낀 후에야 할머니의 사랑, 동네 사람들의 두려움, 민지의 우정, 그리고 이블리스가 램프에 쓴 글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 겁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으로 구분합니다. 인지적 공감이란 상대의 처지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고, 정서적 공감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가영이는 인지적 공감으로 옳은 행동을 했지만, 정서적 공감 없이는 그 행동의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겁니다.
결말에서 이블리스는 가영 앞에서 머리를 숙였고, 천사에게 목이 베입니다. 사이코패스와 사탄,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남을 위해 죽어줄 순 없어도 죽일 수는 있다던 가영과, 인간을 타락시켜야 하는 이블리스가 모두 사랑으로 변화한 겁니다. 본래 사이코패스와 사탄은 누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존재들이 결코 아니지만 작가는 이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사랑과 감정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 가지는 않습니다.
정리하면 '다 이루어질지니'는 공감 없는 도덕성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줍니다. 가영은 학습된 원칙으로 착하게 살았지만, 진짜 행복과 의미는 감정을 느낀 후에야 찾았습니다. 이블리스 역시 983년의 집착 끝에 진정한 사랑을 배웠습니다. 결국 우리는 공감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착한 마음 없이도 착한 행동은 가능하지만, 그 행동이 진정으로 의미 있으려면 공감,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 것이며,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