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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망각의 차, 용서, 배려)

by eunhaji 2026. 5. 13.

 

2016년 겨울, 너무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도깨비>를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첫째 아이를 1년 차 키울 때였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을 때 이 드라마를 통해 소소한 즐거움으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 도깨비를 다시 곱씹어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망각이 정말 배려인가, 용서는 어디서 오는가, 그리고 사소한 친절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이제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대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망각의 차

드라마 속 저승사자는 망자에게 차를 건넵니다. 이 차를 마시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이 사라집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망자를 위한 배려라고 보시는데, 저는 이 부분이 과연 옳은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겪어온 모든 일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가 되었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억울함도 감사함도, 그 모든 층위가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재료입니다. 그 기억을 강제로 지우는 것이 과연 배려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고생 끝에 얻어낸 것들, 사랑했던 사람들, 버텨온 날들을 지우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악인에게는 차를 주지 않습니다. 드라마 안에서도 사채업자나 박중헌처럼 끝까지 악행을 저지른 인물들은 기억을 온전히 안은 채 지옥의 벌을 받습니다. 이 지점은 저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회개 없이 타인을 해친 사람이라면 그 기억과 함께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망각의 차를 제안받는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 힘든 시간 안에 함께한 사람들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선택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친 분이라면 차라리 잊는 편이 낫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옳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만, 적어도 '강제로' 지워지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배려와는 거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정한 용서

저승사자와 김신의 관계는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관계 중 하나입니다. 약 900년 전 어린 왕이었던 저승사자는 박중헌의 조종을 받으며 김신에게 역적의 누명을 씌우고, 그의 누이를 화살로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악연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생에서 저승사자는 차를 통해 기억을 지운 채 저승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결국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내가 그 어린 왕이었다는 진실 앞에서 그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김신에게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위해 해주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가 과거에 묶여 살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를 연구한 심리학자 로버트 엔라이트(Robert Enright)는 "용서는 상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짐을 내려놓는 결정"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International Forgiveness Institute).

김신의 선택이 쉬웠을 리 없습니다. 누이가 자신의 목숨 대신 역적의 누이로 죽어간 장면을 900년 동안 기억 속에 안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무게를 생각하면 용서라는 단어가 얼마나 거대한 결단인지 짐작이 갑니다.

제 삶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첫째아이를 낳고 단유를 시도하던 날, 아이가 심하게 울어 이웃에게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적이 있습니다. 경찰이 집으로 들어와 아이의 몸 곳곳을 확인하고 돌아간 그 순간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웃분은 이후 사과하셨고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그 상처는 한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용서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분도 울고 있는 아기의 소리를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은 사회적 관심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을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겨져 있습니다.

김신이 저승사자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저승사자가 벌 받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죄가 진심이었고, 상대가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용서라는 선택지가 열립니다.

배려

드라마 속 김신은 때때로 인간의 삶에 조용히 개입합니다. 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을 대놓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었던 소년 태이의 피아노를 없애주거나, 위기에 처한 은탁과 그녀의 엄마를 살려주거나, 알바를 구하는 은탁의 소원을 들어주는 식입니다.

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개입, 즉 미시적 개입(Micro-intervention)이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심리학 분야에서도 오랫동안 다뤄온 주제입니다. 여기서 미시적 개입이란 거창한 도움이 아닌 작은 격려, 사소한 친절, 적절한 타이밍의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에서도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가 정신건강 회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출처: Harvard Health Publishing).

저에게 그 김신 같은 존재는 친정엄마입니다. 단유 후 신고 사건으로 심신이 바닥을 칠 때, 엄마가 올라오셔서 몇 달을 함께 육아해 주셨습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낮잠을 잘 수 있게 해 주고, 잠깐이라도 산책 나갈 수 있게 해 준 그 배려가 제가 버틸 수 있는 힘 같았습니다.

도깨비 속 김신의 배려가 특별한 이유는 거창한 능력을 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은탁이 울고 있을 때 곁에 있어주는 것,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도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것, 먼저 다가서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친절이 얼마나 깊이 새겨지는지, 드라마는 조용히 그것을 보여줍니다.

드라마를 보며 저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오래 생각했습니다. 드라마 도깨비는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결국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기억을 지운다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친절 하나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이 세 가지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한 번쯤 이 드라마를 다시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과는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09MezTEC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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