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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인 리뷰 (여성 서사, 낳은 정과 기른 정, 과한 설정)

by eunhaji 2026. 4. 19.

 

화려한 재벌가 배경, 불륜,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가득한데도 마인을 끝까지 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싸우고, 선택하고, 살아남는 쪽이 전부 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가 드라마 전체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주체적 여성 서사 

복수와 부도덕함이 난무함에도 이 드라마를 선택해서 봤던 이유는 주체자들이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효원 가라는 공간은 단순한 재벌집이 아닙니다. 밀폐된 권력 공간, 즉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 구조에 해당합니다. 클로즈드 서클이란 외부와 단절된 특수한 공간 안에서 갈등이 압축되고 폭발하는 서사 장치를 말합니다. 대저택 카덴차와 루바토, 지하 벙커, 투견장이라는 공간들이 모두 이 기능을 수행하면서 인물들의 욕망과 비밀을 가두고 충돌시킵니다. 서희수, 정서연, 강자경 심지어 한진희까지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거짓이 가득한 공간 안에서도 진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특히 서희수의 기억을 잃은 연기는 아이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과 모성본능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내 드라마 속 여성 서사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대 이후 K-드라마에서 여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는 서사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OTT플랫폼 확산과 함께 다양한 수용자층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낳은 정과 기른 정

솔직히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이 복잡했던 부분은 이예진과 서희수의 양육권 갈등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실질적 양육자를 인정하는 기준을 여기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사소송법에서 양육권자를 결정할 때는 친생자 여부보다 아이의 복리(welfare of the child)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습니다. 아이의 복리란 아동의 심리적 안정, 정서적 유대, 생활환경의 연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개념입니다. 서희수가 6년간 하준이를 실질적으로 양육했다는 사실이 재판부 결정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출처: 대한민국 법원).

저는 예전에 보육 보조교사로 잠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언어보다 먼저 감각으로 사랑을 압니다. 말을 못 하는 아이도 자신을 부드럽게 안아주는 손과 그렇지 않은 손을 기가 막히게 구별합니다. 그중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꽤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나서야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예진이 하준이 곁에 있을 때 느끼는 애착의 감정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키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와의 유대는 충분히 진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동심리학에서는 이를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애착 이론이란 영아가 주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가 이후 심리 발달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으로, 영국 정신분석학자 존 볼비(John Bowlby)가 정립한 개념입니다. 하준이에게는 이예진이 주는 생물학적 연결감과 서희수가 주는 일상적 안정감이 모두 필요했고, 드라마는 이 두 가지가 대립이 아닌 공존으로 수렴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관계의 성숙을 맺는다는 것은 우리 누구나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어느 누구를 악역으로 만들지 않고 끝까지 두 사람을 같은 무게로 다룬 것에 대해 손뼉 쳐주고 싶었습니다.

과한 설정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한지용을 굳이 죽여야 했을까?

서사적 카타르시스(catharsis) 측면에서 악인의 제거는 분명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카타르시스란 극적 갈등이 해소되면서 관객이 감정적으로 정화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그런데 현실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드라마에서 살인이라는 결말은 오히려 몰입을 끊어놓을 수 있습니다. 법적 처벌, 권력 박탈, 사회적 매장 등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한 결말들이 존재하는데, 죽음으로 모든 것을 수렴시킨 방식은 저한테는 조금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개인적 판단이지만, 살아있는 한지용이 스스로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더 보기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한지용의 생모도 놀라웠습니다. 신실한 믿음과 정결을 지키는 수녀라는 직업을 가진 엠마수녀를 생모로 설정한 것은 종교적 대립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드라마가 이 인물을 충분히 깊이 다루지 못한 채 사건 진행의 도구로 활용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큰 그림 속에서 엠마라는 인물이 가진 내면의 복잡성이 조금 더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마인은 분명히 남다른 드라마였습니다. 서로 다른 목적과 상처를 가진 여성들이 결국 같은 곳을 향해 손을 내미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고, 그 과정에서 '나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습니다. 마인을 보고 나서 우리 주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이 드라마는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fdfVWQt8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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