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마녀>는 강풀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세상이 만든 가혹한 낙인 앞에선 한 여자와 그녀를 구원하려는 한 남자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 미정이는 주변 사람들을 다치거나 죽게 하는 불운 때문에 마녀라고 불렸고 이는 스스로 고립시키며 세상과 단절하며 외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모두가 피하는 가운데 동진이만 편견 없이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위험한 존재가 아닌 외로운 사람으로 바라봐주며 마녀라는 프레임을 벗겨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람들에 의해 사회적 낙인을 받았다면 한 사람에 의해 구원을 얻습니다.
나는 낙인에 가담하는 사람인지, 편견없이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인지 드라마를 보며 생각에 잠겨 봅니다.
편견의 심리 - 낙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반드시 누군가를 지목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오류'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귀인 오류란 사건의 원인을 특정 대상에게 돌리는 인지적 편향을 의미합니다. 미정이 주변에서 일어난 사고들이 실제로는 통계적 우연에 불과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미정이라는 한 사람의 탓으로 몰아갔습니다.
제 친구의 남편이 육아휴직을 냈을 때 겪은 일이 정확히 이런 케이스였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편견이 강한 조직에서, 복직 후 새로운 업무에 서툴면 "오랫동안 쉬어서 적응 못한다"는 프레임이 씌워졌습니다. 실제로는 업무가 바뀌어서 당연히 익숙하지 않은 건데, 사람들은 육아휴직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모든 원인을 끼워 맞춰버립니다. 소문은 부서를 넘어 퍼져나갔고, 결국 친구의 남편은 1년 만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2010년 타블로 학력 위조 논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의혹은 성적증명서, 동창 증언 등 완벽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번 씌워진 의심은 사실 확인 이후에도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따라다닙니다. 못 믿어서가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타블로뿐만이 아닌 가족까지 힘들게 했습니다. 한 사람의 악플로 시작된 무책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트린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미정이가 마을에서 쫓겨난 과정을 보면, 마을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미정을 지목했습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볼 때 집단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냅니다. 미정의 아버지가 소문을 낸 사람을 찾아내 난장판을 만들었던 건, 딸을 지키려는 본능이었지만 동시에 이미 굳어진 편견을 깨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동진의 선택 - 통계학으로 사랑을 증명하다
동진이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굴레에서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통계학과에 진학해 '박미정은 마녀가 아니다'를 증명하려 합니다. 이 접근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설을 세우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동진이가 세운 죽음의 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0m 이내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 위험
2. 10분 이상 함께 있으면 위험
3. 10마디 이상 대화를 나누면 위험
4. 이름을 알면 위험
5. 사랑을 고백하면 죽음
동진은 이 가설을 직접 몸으로 시험했습니다. 배달원으로 위장해 헬멧과 프로텍터를 착용하고,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고드름에 맞으면서도 법칙의 오류를 찾으려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건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습니다. 미정이에게 "당신은 괴물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기 위한, 자기 목숨을 건 증명이었습니다. 여기서 동진이 발견한 핵심은 '미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치지 않는다'는 역법칙이었습니다. 과거 미정이 좋아했던 익종이 말벌에 쏘인 게 아니라 간질 발작을 한 것처럼, 사고의 원인은 미정과 무관했습니다.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가설들이지만 드라마에서 동진이는 꽤 진지하였습니다. 동진이의 통계에 결론은 미정 주변의 사고는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동진이 마지막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난 건, 미정에게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은 동시에 시작되기 어렵다는 것, 자신이 온몸으로 보여준 진심이 미정에게 전달되길 기다렸던 겁니다. 3개월 후 빈의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10분이 지난 후에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미정이 "내 곁에서 멀어지지 말라"라고 말한 순간, 죽음의 법칙은 깨졌습니다.
작은 구원
나는 동진이 처럼 미정이의 낙인을 벗겨줄 수 있는 사람일까? 생각해 봤을 때 선뜻 동진이와 같은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정이 주변이 알 수 없는 불운이 반복되면 저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아도 공포가 생기고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미정이의 아픔을 함께 견뎌준다는 것은 무거운 결심이 필요합니다. 주변인들의 시선이 나 역시 그 낙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사회에 수많은 미정이가 있는데 계속 외면하고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진이처럼은 아니지만 저만의 따듯함으로 미정이를 대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구원이 아닌 작더라도 인간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보기도 하고, 나의 간식을 나눠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마을사람들 같은 사람일지라도 지금은 저만의 방법으로 따스함 한 모금을 건네주려 합니다. 섣부른 판단보다는 직접 애기를 통해 그 사람의 진실성을 알게 된다면 수많은 미정이를 구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가 실천하는 작은 구원이 수많은 미정이들에게 마음이 닿기를 원하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