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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홀릭 (해리성 정체감 장애, EI, 이중인격)

by eunhaji 2026. 5. 8.

 

드라마 멜로홀릭은 여자의 속마음을 읽는 초능력 남자와 이중인격 여자의 로맨스를 다루는데,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드라마보다 제 주변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심리와 감정,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꽤 진하게 담고 있습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

해리성 정체감 장애(DID,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란 하나의 인간 안에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인격이 존재하며, 각 인격이 교대로 신체를 통제하는 심리 질환입니다. 여기서 DID란 과거에는 다중인격 장애(MPD)로 불렸던 진단명으로, 미국 정신의학회 DSM-5 기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입니다(출처: 미국 정신의학회).

드라마 속 예리는 어릴 적 친한 친구에게 고백을 거절당하고, 그 상처를 버티기 위해 '한주리'라는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냈습니다. 한주리는 예리와 정반대로 거침없고 충동적이며, 누군가 예리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하거나 감정을 자극하면 튀어나옵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직접 이 소재를 접하고 주변을 돌아봤을 때 생각보다 현실과 그리 멀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친구 중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있습니다. 흔히 어린이집 선생님이라고 하면 술자리나 나이트와는 거리가 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꽤 큰 편견이라는 걸 일찍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직접 어린이집 보조교사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제각각인 아이들을 한 명씩 맞추고, 재우고, 먹이고, 일지까지 쓰는 그 강도를 몸으로 겪고 나니 그 친구가 일주일에 두 번 술집에 가고 월 한 번 나이트에 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만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버티기 위해, 스스로가 만들어낸 방어 기제라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EI(감정 인식 능력)

드라마에서 은호는 여자의 손을 잡으면 속마음이 들리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저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단순히 생각했는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정말 주변에 초능력은 아니지만 감정 인식 능력(Emotional Intelligence, EI)이 높은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EI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조절, 활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피터 살로베이와 존 메이어가 처음 개념화한 이 능력은, 단순히 눈치가 빠른 것 이상으로 상대의 맥락과 감정 상태를 입체적으로 읽어내는 역량입니다. 초능력이 없어도 이런 사람들은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을 꽤 잘 포착해 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자기 입장보다 상대의 상황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은호가 드라마 초반에 설아에게 "넌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는 말을 들을 때, 그 장면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도 연애할 때에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기만 했고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노력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은호도 열심히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설아의 지적이 날카로웠습니다.

나를 안아주는 용기

멜로홀릭은 전반부까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따라갑니다. 초능력, 이중인격, 엉뚱한 상황들이 웃음과 두근거림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분위기가 급격하게 무거워집니다. 여기서 장르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로맨스와 스릴러의 결합이 신선하다"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어느 쪽도 완전히 잡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로맨스를 입장에서 사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감정선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선우라는 인물이 예리의 이중인격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그 진실이 밝혀지는 방식은 나름의 반전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까지 가는 길이 조금 거칠었다는 것,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좋았던 이유는 예리와 한주리의 관계가 치유되는 방법이었습니다. 예리가 한주리를 "나쁜 나"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려 했던 또 다른 나"로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에서 "싫어한 적 없어. 그동안 나 지켜주려고 했던 것도 알아"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제 경험상 이런 자기 수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 대사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심리 치료에서는 이를 내면 아이 치유(Inner Child Work)라고 부릅니다. 내면 아이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감정적 자아를 가리키며,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현재의 관계와 행동에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예리가 한주리를 인정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상처를 외면하는 대신 마주하고 위로하는 내면 아이 치유 과정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저도 솔직히 이 부분에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제 연약한 면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것, 과거의 트라우마를 외면하기보다 위로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합리화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런 부분까지 사랑하겠다는 용기가 좋았습니다.

멜로홀릭은 완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장르 혼합의 밸런스가 흔들리는 부분도 있고, 초능력 설정이 후반부로 갈수록 흐릿해지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 안의 다른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는 꽤 오래 남길 드라마입니다. 자기 안의 연약하거나 거친 면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가볍게 시작해서 생각보다 깊은 지점까지 가게 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LumGpaC4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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