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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고서야(생존기, 한세권, 최반석)

by eunhaji 2026. 8. 26.

 

직장인 생존기

2021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를 시청하며 오피스물 특유의 진한 현실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화려한 성공 신화나 작위적인 로맨스 대신, 지방 제조업 사업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구조조정과 인사 이동의 칼바람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을 불안감을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직장에서 겪는 고충은 드라마 속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느꼈던 막막함부터, 직급이 올라가며 짊어지게 되는 책임감의 무게까지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지친 몸을 기댈 때면 과연 이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초등학생 두 아이의 밝은 웃음을 보며 다시 힘을 내고, 밤늦게 걸려 온 부모님의 안부 전화 한 통에 마음을 다잡는 일상은 직장인들의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무이기도 합니다. 주말 모임에서 동료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도 직장에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고충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드라마는 조직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치열한 생존 본능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정통 오피스 드라마로서의 뛰어난 가치를 지닙니다. 다만 극적 긴장감을 위해 일부 캐릭터의 행동이나 갈등 양상이 다소 극단적으로 연출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조직의 시스템보다 개인의 돌발 행동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처럼 묘사된 지점은 실제 조직 생활의 정교한 매커니즘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직장의 고단함과 씁쓸함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게 만든 연출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내가 한세권이라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세권 캐릭터는 과도한 야망과 실속 없는 자신감으로 주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며 끊임없이 사건을 일으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을 것입니다. 대단한 야망을 품고 조직의 높은 자리를 노리기보다는, 주어진 업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최소화하고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을 것입니다. 일 처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화려한 성과보다 완벽한 마무리와 신뢰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주말마다 참여하는 모임이나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늘 일의 진행 상황을 머릿속으로 점검하며 작은 오차도 줄이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늘 강조하는 가치는 감정적 의욕보다 객관적인 실적과 결과입니다. 일을 추진함에 있어 불확실한 야심을 앞세우기보다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완벽하게 대처하는 편이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생활을 꾸려갈 때도 작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핵심이듯, 직장에서도 결과의 완벽함을 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드라마가 한세권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역이나 트러블메이커로만 소비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안해하는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낸 점은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하고 주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태도는 직장 윤리 관점에서 명백히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언행에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하며, 실수를 줄이기 위한 철저한 준비 과정이야말로 프로가 갖춰야 할 진짜 자질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최반석이라면

22년 차 베테랑 개발자 최반석이 한순간에 인사팀으로 발령받아 생소한 업무를 견뎌내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동일한 상황에 처했다면 아무런 준비 없이 원치 않는 부서에서 무작정 버티기보다는,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와 전문성이 아까워서라도 주저 없이 다른 회사로 이직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올리기 위해 바친 시간과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초등학생 두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그리고 연로하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정성을 다해 일구어낸 직업적 가치를 조직의 일방적인 인사이동 때문에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퇴근 후 남편과 미래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늘 도달하는 결론은 스스로의 전문적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해 주는 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정기적인 친목 모임에서 만나는 지인들의 조언 역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지 말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여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가 보여준 최반석의 버티기 전략은 조직 내 연대와 버텨내는 삶의 숭고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역량을 전혀 펼칠 수 없는 생소한 부서에 머무는 것은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엄청난 손실입니다. 자신이 지닌 가치를 정확히 평가받을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이직하는 것이야말로 수년간 쌓아온 커리어에 대한 진정한 예의이자 명예로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roVsHEy61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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