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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나 봄 (역할 전환, 식상한 불륜, 다름을 인정)

by eunhaji 2026. 4. 18.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봐야 비로소 내 삶이 보인다는 말, 충분히 공감합니다. 드라마 '봄이 오나 봄'을 보다가 강릉여행에서 있었던 아기 고양이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남편과 제가 같은 상황을 두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과 겹쳐졌습니다.

역할 전환

'봄이 오나 봄'에서 두 주인공이 몸이 뒤바뀌는 장치는 단순한 설정이 아닙니다. 드라마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역할 전환(role reversal)에 해당합니다. 역할 전환이란 타인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새롭게 인식하는 심리적 기법으로, 심리치료에서도 활발하게 활용됩니다.

앵커를 꿈꾸는 이기적인 기자 봄이는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공허한지 몰랐습니다. 국회의원 사모님으로 완벽해 보였던 이봄은 정작 자신이 가족을 위해 포기해 온 것들이 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몸으로 살아본 뒤에야 두 사람은 자기 삶의 민낯을 직면합니다.

저도 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봤습니다. 강릉에서 저녁을 먹으러 걸어가던 중 아기 고양이가 우리 가족 옆으로 걸어왔습니다. 아기 고양이는 우리 가족에게 키워달라는 마음으로 함께 걸었지만 저와 큰아이는 키울 수 없는 현실을 먼저 봤고, 남편과 둘째는 그 아기 고양이가 처한 현실을 봤습니다. 그때 저는 남편과 둘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게 감수성의 차이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였다는 것입니다.

공감 능력과 관련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인 조망 수용(perspective-taking)은 단순한 감정 이입과는 다릅니다. 조망 수용이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인지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를 훈련할수록 관계 갈등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식상한 불륜

드라마에서 남편 윤철과 비서 서진의 불륜은 사실 저에게 큰 흥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가장 신뢰하는 측근과의 불륜"이라는 서사 구조는 이미 수많은 드라마에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설정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배신과 신뢰 붕괴가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인 상처라는 것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20대 때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그대로 잠적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잃은 돈보다 그 친구를 잃은 감각이 훨씬 더 오래 남았습니다. 신뢰를 쌓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드라마가 이 불륜을 단순한 자극 요소로만 활용하지 않고, 이봄이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은 점은 그나마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배신을 경험한 이봄이 결국 이혼을 선택하는 과정은 피해자 서사에서 주체적 서사로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이유리와 엄지원의 연기 앙상블이 이 허점들을 상쇄했습니다. 배우의 연기는 설정의 빈틈을 메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다름을 인정

드라마 후반부에서 두 봄이가 생방송에서 털어놓는 고백은 이 드라마의 핵심을 압축합니다. "성공만이 최고라고 믿고 달려온 길에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는 대사는 저에게 상당히 오래 남았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 다른 하나는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입니다. 인지적 공감이란 상대방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방식이고, 정서적 공감이란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성적인 성향이 강해서 인지적 공감에 치우쳐 있고, 남편은 감성적인 성향이 강해서 정서적 공감이 먼저 발동합니다. 강릉에서의 그 아기 고양이 상황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저와 큰아이는 키울 수 없는 현실을 인지적으로 판단했고, 남편과 둘째는 그 고양이의 처지를 정서적으로 공명했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그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올해도 강릉여행 계획이 있는데, 우리를 선택하는 반려동물이 있다면 함께 데려오자고 온 가족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드라마 하나가 가족 안에서 이런 대화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공감 능력은 선천적 기질보다 후천적 경험과 대화를 통해 발달하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출처: 한국가족관계학회).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가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 기술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 이상의 기능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보여준 메시지는 결국 단순합니다. 강요와 억압이 아니라 존중과 이해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남편과 아이들을 대할 때 "왜 저렇게 생각하지"가 아니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를 먼저 묻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이 드라마가 판타지 설정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건네는 말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 그 손을 잡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 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Cwaz2YqH4I&t=554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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