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욕과 욕망의 무대
잠들지 않는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 싸움을 다룬 드라마 불야성을 떠올려 봅니다. 거대한 부와 권력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시청하는 내내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서이경이라는 냉혹한 제국 건설자와 그녀의 눈에 들어온 흙수저 이세진의 만남은 시작부터 강렬했습니다. 돈과 야망이 전부인 세상에서 서로를 이용하고 스승과 제자라는 기묘한 관계로 얽혀가는 과정은 세련된 연출과 어우러져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차갑고 현실과 떨어진 탐욕의 세계가 서늘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수많은 조직과 사람을 경험하고, 가정에서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현실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극 중 인물들의 선택은 위험천만해 보였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길에 오르며 느끼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나, 퇴근 후 남편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나누는 담소의 가치에 비하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하는 부와 권력은 손에 쥐어도 쉽게 사라질 안개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질수록, 아무리 화려하게 빛나는 자리라도 스스로를 태워가며 도달해야 한다면 과연 그 끝에 무엇이 남을지 의문이 듭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모임이나 직장에서도 가끔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차가운 계산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저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됩니다. 드라마는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해주었지만, 동시에 지나친 탐욕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세진의 선택에 대한 생각
만약 이세진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제 선택은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서이경의 손을 잡고 그 밑에서 일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대역이 되어 위험한 거래 현장에 나아가거나 목숨을 담보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결코 성향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부와 명예를 약속받는다 해도 나 자신의 안전과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부터 직장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지금까지,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언제나 내 일상의 안정이었습니다. 일터에서 승진이나 더 나은 보상을 제안받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이 가족과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거나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위험한 길이라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퇴근 후 두 아이가 소란스럽게 반겨주는 거실로 돌아와 남편과 오늘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연로하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올리는 매일의 평범한 일상이 곧 나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참아가며 타인의 야망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은 그 어떤 가치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신체적·정신적 위협에 노출되는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모임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간혹 과감한 투자나 위험한 도전을 통해 큰 성과를 얻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만, 매번 스승의 그림자가 되어 위험을 무릅썼던 세진의 삶을 떠올려보면 역시 차근차근 내 힘으로 구축하는 안전한 울타리가 훨씬 값지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서이경의 삶에 대한 각색
만약 서이경의 입장이 되어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무리 혹독하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해도, 극 중 이경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얼음여왕으로 성장하거나 그 엄혹한 시련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향을 지녔기에, 차가운 이성적 사고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뜻한 감성과 공감 능력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은 마음에 큰 짐이 됩니다. 실제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나 부모님을 모실 때, 그리고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나 후배들을 대할 때 언제나 따뜻한 공감과 관계의 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뵈어 함께 식사를 나누고, 직장에서도 엄격한 원칙만을 내세우기보다는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다독여줄 때 더 큰 성과와 보람이 돌아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무조건적인 냉철함과 혹독함은 사람을 다스리는 완벽한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깊은 고독과 불신만을 낳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세진을 발탁해 키우는 방식 역시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라며 차가운 사지로 몰아넣기보다는, 사랑의 방식을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올바르게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고, 아픈 곳을 보듬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했을 것입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권력의 탑을 쌓아 올리는 것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바탕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훨씬 더 크고 오래가는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