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사라
드라마 속 강사라는 도도하고 날이 서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결핍이 많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재벌가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완벽한 가면을 쓰고 독한 말을 내뱉습니다. 만약 제가 현실에서 강사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저는 그렇게 매사 날을 세우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굳이 내 가치를 증명하려고 남을 깎아내리거나 억지로 센 척하기보다, 차라리 제 능력을 서류와 성과로 깔끔하게 보여주는 이성적인 방식을 택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잘났으니 알아달라"라고 시위하는 대신, 직장 동료나 아랫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리더가 되어 내 편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거나 학부모 모임에 가보면 꼭 강사라처럼 유독 쌀쌀맞고 기싸움을 하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같이 맞받아치기보다는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이 결국 이기는 길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드라마 속 사라는 류은호라는 순수한 청년을 만나면서 비로소 가면을 벗고 부드러워지는데, 그 과정을 보며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진작 저렇게 주변을 돌아보며 편하게 살지, 왜 저토록 스스로를 괴롭혔을까' 하는 안타까운 비판의 시선도 함께 듭니다. 내 자존감은 남을 이겨서 얻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단단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라면 그 외롭고 차가운 성 안에서 진작 걸어 나와, 먼저 손을 내미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현실의 로맨스
한 달에 한 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한세계의 삶은 언뜻 화려한 여배우의 기이한 로맨스로만 보이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현실과도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저 역시 직장에서는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사회인이다가도,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곤 합니다. 퇴근 후 현관을 들어서면 옷도 가꿔 입기 전에 칭얼거리는 두 아이들의 밥을 챙기고, 밀린 빨래를 돌리느라 정신없는 엄마의 얼굴이 됩니다. 여기에 언제나 늘 다정하고 따뜻하게 저를 지지해 주는 남편 앞에서는 한없이 편안하게 응석을 부리는 아내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루에 몇 번씩 얼굴과 역할을 바꾸며 살아갑니다. 어떨 때는 직장에서 너무 지치고 자존감이 떨어져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서도재가 얼굴이 바뀐 한세계를 단번에 알아봐 주었을 때 제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정한 남편이 퇴근길에 툭 던지는 "오늘 고생 많았어"라는 따뜻한 한마디, 혹은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삐뚤빼뚤 적어준 "엄마가 최고야"라는 편지를 받을 때, 비로소 '아, 내가 지치고 변해도 나를 온전히 알아봐 주는 내 편이 여기 있구나' 하는 깊은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비현실적인 마법을 다루지만, 진정한 사랑은 겉모습이 아닌 그 사람의 알맹이를 바라봐 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내 수수한 민낯과 지친 모습까지도 늘 한결같이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판타지 드라마보다 더 기적 같은 현실의 로맨스라고 생각합니다.
남자가 된 나
만약 제가 한세계가 되어 제 실제 성격대로 이 드라마를 다시 각색해 본다면, 저는 아예 과감하게 '남자'로 변하는 설정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습니다. 원래 드라마에서는 노인, 아이, 외국인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제가 각색할 버전에서는 아주 건장하고 평범한 30대 남성의 몸으로 변해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여성이자 엄마, 아내로서 살아온 제가 남자의 몸이 된다면, 세상이 나를 대하는 시선과 목소리의 무게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울 것입니다. 제 성격대로라면, 남자의 몸으로 변했다고 해서 방 안에서 울고 짜증만 내며 숨어지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일주일 동안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활동들을 당당하게 즐길 것입니다. 예컨대 남자의 목소리로 직장 상사나 거래처와 더 거침없고 단호하게 비즈니스 협상을 진행해 보거나, 무거운 짐을 가볍게 번쩍 들며 육체적 해방감을 만끽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서도재와의 로맨스 역시 훨씬 유쾌하고 능청스럽게 바뀔 것입니다. 멋진 남자의 형상을 한 제가 도재의 멱살을 잡고 "얼굴이 이래도 나인 걸 알아보겠어?" 하며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장면을 넣는다면, 기존의 애절하기만 했던 분위기 대신 신선하고 통쾌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겉모습은 듬직한 청년이지만 속은 다정하고 생활력 강한 아줌마의 영혼이 들어있으니, 도재를 챙겨줄 때도 든든하고 억척스럽게 돌봐주는 독특한 조화가 살아날 것입니다. 외형의 한계를 뛰어넘어 내 안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는 진취적인 한세계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참 가슴이 뻥 뚫리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