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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같은 사람, 조철강, 신뢰)

by eunhaji 2026. 6. 1.

 

드라마의 끝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아리송한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분단이라는 벽 사이에서 가능한 최선을 선택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신선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전쟁 중에 이산가족이 되셨고, 북에 계신 할아버지와 삼촌의 생사조차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북한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같은 사람

윤세리는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하게 된 재벌 여성이었고, 리정혁은 갈 곳 없는 세리를 숨겨주며 남한으로 돌려보내 주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만나 크고 작은 사건들로 웃음과 감동을 줍니다. 사사건건 다르지만, 결국 서로 걱정하고 챙기고 감정이 생기는 과정이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사택마을 언니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화장품 성분 따지고, 생일상 차리고, 남의 연애 사정에 끼어드는 모습이 제가 동네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북한이라는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아버지는 이산가족(離散家族)입니다. 이산가족이란 전쟁이나 분단 등의 이유로 강제로 헤어져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가족을 의미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 오르면서 아버지와 형은 북에 남고 할머니와 아버지만 남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고 상봉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러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2025년 기준 약 13만 4천여 명을 넘어서며, 이 중 생존자는 약 3만 4천여 명 대로 줄어든 상황입니다(출처: 통일부). 시간이 갈수록 만남의 기회는 줄어듭니다. 드라마가 허구의 해피엔딩을 보여줬지만, 현실의 이산가족에게 그 결말은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세리를 원래 남한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정혁이 세리를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까지 직접 데려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군사분계선이란 1953년 정전협정으로 설정된 남북 간의 실질적 경계선으로, 그 양쪽으로 각 2km씩 설정된 지역이 비무장지대(DMZ)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없는 잔인한 경계선이었습니다.

내가 조철강이라면

꽃제비출신 조철강은 출생의 결핍 때문에 성공과 돈에 눈이 먼 악역으로 나옵니다. 문화재 도굴, 밀수, 비자금 조성 등 온갖 불법적인 범죄를 주도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부패한 군인입니다. 특히 리정혁의 형인 리무혁을 죽였고 정혁이가 세리를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가문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독사 같은 집요함이 드라마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였고 결국 투항하다 사살됩니다. 조철강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의지할 부모도, 기댈 배경도 없는 북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건 매일매일이 죽음과 맞닿아 치열한 생존을 했을 것입니다. 이 결핍이 왜곡되어 리무혁처럼 엘리트인 사람들에게 박탈감과 질투를 느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조철강이 악역이 아닌 선한 인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조철강이라면 무혁이의 자리를 대신해 정혁이를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보위부 내에서 청렴하고 의리 있는 사람으로 정혁을 도와 윤세리가 처음부터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훨씬 수월하게 도왔을 것이며, 꽃제비 출신으로 부모 없는 외로움과 결핍에 있는 주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어려운 주민들을 도왔을 것입니다. 결핍을 선행으로 바꾼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극의 긴장감은 떨어질 수 있지만 조철강이 보여주는 신념과 따듯한 마음은 본받을 것이 많은 태도로 보여질 것 입니다.

신뢰

드라마 속 두 사람은 결국 스위스에서 1년에 딱 2주, 그 짧은 시간을 약속으로 삼아 관계를 이어갑니다. 이 설정을 보면서 저는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이야기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장거리연애 그 이상의 관계라 현실적으로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장거리 연애는 2~3시간 이상의 거리를 두고 만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제 직장 동료가 장거리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남자 동료는 서울 사람이고, 그의 아내는 부산 분입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만나 소개팅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KTX를 타고 3시간 거리를 주말마다 오가며 만남을 유지했습니다. 주변에서 헤어질 거라는 말이 많았지만, 결국 결혼까지 했습니다. 사실 저도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결혼식은 부산에서 열렸고 박수를 열심히 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단순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불편함을 버텨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장거리연애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세리와 정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년에 2주라는 만남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그 제약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리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것, 그게 이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이었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자료에 따르면, 장거리 관계에서 관계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상호 신뢰와 미래 계획의 공유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실제로 제가 본 동료 커플도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고, 언제 어느 도시에 정착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미리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 계획이 불안을 붙잡아 줬던 것입니다.

물론 세리와 정혁처럼 국가 체제가 갈라놓은 관계는 차원이 다릅니다. 1년에 2주로 남은 삶을 살아간다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이라 했지만, 그 이후의 삶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 선택 자체는 존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된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제 눈엔 용기로 보였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도 한동안 에델바이스 꽃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소중한 추억'. 두 사람은 그 꽃이 피는 나라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만났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또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 동안 북에 계신 가족과 한 번이라도 만나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게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거리가 문제라면, 신뢰를 더 단단히 쌓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면 됩니다. 지금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상황이 바뀔 때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ll0BluI0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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