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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없어 거짓말 (거짓말 탐지 능력, 고난의 가치, 믿음이라는 선택)

by eunhaji 2026. 4. 23.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인간은 평균 하루에 1~2회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선의의 거짓말이든 아니든 저부터 수없이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진짜 신뢰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거짓말 탐지 능력

주인공 솔희는 목소리만 들으면 거짓말 여부를 판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인간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능력을 기만 감지(deception detection)라고 부릅니다. 기만 감지란 상대방의 언어적·비언어적 신호를 분석해 거짓 진술 여부를 판별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저도 가끔 이 능력이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20대 시절, 오래 믿어온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챘다면, 금전적 손실보다 더 깊이 파였던 배신감은 없었을 겁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 성과가 상사 이름으로 보고되던 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솔희는 거짓말이 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든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부모님이 싸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임을 알고,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 뒤에 다른 의도가 섞여 있음을 감지합니다. 아는 것이 항상 힘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솔희가 몸으로 증명합니다.

제가 진짜 갖고 싶은 능력은 거짓말 탐지가 아니라, 상대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용이 아닌 연결의 목적으로 말입니다. 실제로 봉사 활동 중 식당에서 처음 설거지를 하다가 담당자분께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적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기분이 상해 저도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 속에서 혼자 고된 일을 감당해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속마음을 처음부터 읽을 수 있었다면, 제가 먼저 "잘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한 마디 건넸을 것입니다.

고난의 가치

드라마는 후반부에 솔희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폭발 사고 이후 거짓말이 들리지 않게 된 솔희가 처음에는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보다는 지금 제가 믿고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능력이 사라진 것이 상실이 아니라 성장임을 드라마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 IMF 외환위기를 집안에서 직접 겪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기를 학생의 나이로 통과했기 때문에, 당시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컸습니다. 거짓말 탐지 능력이 있었다고 해도 그 시절의 고난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돌아보면, 그 고난들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별하는 눈,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 어려운 상황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내성 이것들은 모두 고난이 빚어낸 삶의 근육입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개념도 이 드라마가 진지하게 다루는 주제입니다.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이란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불필요한 상처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실을 감추는 행위를 말합니다. 저도 수술로 큰 병원에 장기입원했을 때 아이들에게 간단한 시술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매일 통증을 참아가며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거짓이었지만, 아이들을 불안에 빠뜨리지 않으려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솔희의 능력 앞에서도 이런 거짓말은 진실로 들렸을 겁니다.

믿음이라는 선택

드라마의 메시지는 신뢰란 검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는 것과 솔희가 도하를 믿기로 결심하면서 "27년간 의지한 내 귀보다 도하 씨를 더 믿고 싶었나 봐요"라는 대사가 그 핵심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솔희의 능력이 사라지는 방향보다, 억울하게 수감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활용으로 이어졌다면 더 통쾌한 서사가 됐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내용 중 조재찬이 거짓으로 자수하고, 조득찬이 그 뒤를 조종하는 과정에서 솔희가 진실을 밝혀내는데 이와 같은 사건들에 진실을 밝혀 내는 일이라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범죄 심문 현장에서 공식적인 진실 검증자로 활동하는 방향이었다면, 능력의 존재 이유가 훨씬 선명해졌을 겁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꽤 아쉬운 대목입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남긴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게 된다면 더 행복해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통해 쌓인 삶의 근육과,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키워진 공감 능력이 거짓말 탐지보다 훨씬 단단한 무기입니다. 들리는 말보다 보이는 진심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솔희가 드라마 마지막에 내린 결론이고 저도 지금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능력이 없어도 관계를 믿는 연습을 계속하는 것, 그게 결국 더 나은 연결로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5POJxQSj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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