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의금을 돌려받으려고 가짜 결혼식까지 올린다는 설정이 굉장히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공감이 됐습니다. 해영이가 두드리는 계산기 소리가,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소리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기업복지
드라마 속 해영이가 회사 결혼 복지 항목을 듣고 눈이 뒤집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본인 결혼 시 축의금 300만 원, 신혼 유급휴가 2주, 배우자 의료비 지원, 결혼기념일 꽃바구니, 5주년마다 리조트 휴가까지. 일은 똑같이 하는데 미혼 직원은 이 복지를 하나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해영이는 분노합니다.
저도 중소기업을 오래 다녀봐서 아는데, 저런 복지는 대기업 이야기입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지였습니다. 친구가 대기업 성과급으로 제 6개월치 월급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억울하다기보다는, 그 친구도 거기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이슈가 되는 개념이 바로 복리후생(fringe benefit)입니다. 복리후생이란 기업이 임금 외에 근로자와 그 가족에게 제공하는 부가적인 보상 체계를 의미합니다. 결혼, 출산, 자녀 교육과 연계된 복리후생은 기업의 저출산 대응 전략으로 확산되는 추세인데, 이게 미혼 직원 입장에서는 명백한 역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는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00인 이상 기업의 약 62.4%가 결혼 및 출산 관련 경조사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일부 대기업은 결혼 시 수백만 원 규모의 지원금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이 금액이 누적되면 미혼 직원이 수년간 받지 못하는 복지 격차가 꽤 커집니다. 이런 문제들이 야기되면서 요즘은 미혼자들에게도 비혼 선언 시 비혼선언지원금, 반려동물 수당, 복지포인트 등 다양한 싱글 맞춤형 서비스 이용을 지원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존중하며, 공평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인정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새입니다.
손해 없는 사랑
드라마에서 해영의 어머니 은옥은 수십 년간 가정 위탁(foster care)을 해온 인물입니다. 가정 위탁이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일시적으로 위탁 가정에서 양육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국가가 아닌 일반 가정이 아이를 돌본다는 점에서 시설 보호와 구별됩니다. 해영은 그 위탁 과정에서 내 공간이, 내가 받아야 할 사랑이 나뉜다는 서러움을 품고 자랐고, 그 상처가 그녀를 계산적인 사람으로 만든 배경이 됩니다.
제 시어머니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 전 아기들을 임시로 돌보셨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국내 대표적인 아동 복지 기관으로, 입양과 위탁 보호를 함께 운영합니다.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보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한번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계산기를 두드려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 시어머니도 해영의 어머니도 순수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하신 것입니다. 해영이가 결국 지욱이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그녀가 처음으로 계산 없이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게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 됩니다.
저도 가족에게는 손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위해 희생하신 그 방식을 그대로 저도 제 가족을 위해 반복하고 있는데, 억울하거나 서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게 사랑의 형태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가정 위탁 보호 아동은 약 8,500명에서 9,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위탁 가정 수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입니다(출처: 통계청).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은옥 같은 사람이 드라마에서라도 빛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손해 보는 삶이 나쁠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때, 그 선택이 손해처럼 보여도 실은 손해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해영이가 가짜 결혼식에서 엄마를 위해 웨딩 사진을 찍어준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 계산기로 두드릴 수 없는 것들, 어쩌면 그게 삶에서 진짜 남는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복지 좋은 회사에 가라고 말하면서도,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먼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이 드라마를 보며 들었습니다.
가치 있는 적자
해영이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던 부분은 자연이를 가족으로 지냈다는 부분입니다. 사실 해영이는 손해 보기 싫은 사람보다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인자의 딸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죄가 자연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연이 또한 아빠로부터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온 아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겨진 자연이를 정성으로 돌봤던 엄마의 삶과 진한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결핍을 채운 자연은 피보다 진한 친동생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해영이처럼 단단하고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자녀에게 피해를 준 아이를 보면 그 가족 전체가 미워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도 해영이처럼 내 가족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의 가족의 마음을 너그러이 품을 수 있을까요? 10번을 생각해도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아픈 기억을 마주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은 가족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아픔도 크다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노력해 보려 합니다. 자연이처럼 보호가 필요한 아이일 수도 있으니 원망과 증오보다는 이해와 연민으로 가치 있는 적자를 선택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