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를 많이 하면 행복할까요, 아니면 소비가 많아서 불행해질까요? 루이를 보고 부럽기도 하고 비현실적이라 웃고 넘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백억짜리 황금 그룹 후계자가 300원짜리 막심골드 커피 한 잔에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 처음엔 웃겼는데 나에게는 평범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 묘하게 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루이를 통해 즐거웠고 복실이를 통해 위로받는 쇼핑왕 루이를 오랜만에 역주행해보았습니다.
루이의 소비
저는 아이들이 유난히 힘들게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웃렛으로 향합니다. 꼭 비싼 걸 사는 게 아닙니다. 양말 한 켤레, 또는 달달한 마카롱 두 개정도입니다. 특별하지 않지만 이렇게 소비를 하고 나면 숨이 조금은 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보상소비(Compensatory Consumption)라고 부릅니다. 보상소비란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존감 위협을 받았을 때 소비 행위를 통해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기제를 말합니다. 단순한 충동구매와 달리, 감정 조절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쇼핑왕 루이의 주인공 루이는 선천적으로 이 보상소비 회로가 과잉 작동하는 인물입니다. 기억을 잃고도 쇼핑 본능은 살아남았고, 100만 원짜리 가방을 충동 구매하면서도 가격 대비 품질을 귀신같이 짚어냅니다. 드라마 안에서 루이의 소비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고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의 외화(外化)에 가깝습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루이에게 쇼핑은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었을 겁니다.
저와 같은 경우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인터넷쇼핑으로 보상받는데 택배가 오기 전까지 그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고 행복합니다. 물론 제 형편에 맞는 수준에서 소비합니다.
드라마에서 루이의 소비 행동을 보며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저는 공감이 컸습니다. 형편에 맞는 선에서 감정을 소비로 환기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감정의 뿌리를 외면한 채 소비만 반복하는 경우입니다.
진심의 무게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복실이가 루이에게 건네는 500원짜리 동전 한 개에 담겨 있습니다. 루이는 그 동전을 보물처럼 간직합니다. 수백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던 남자가 500원을 지갑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두는 장면은, 행복의 조건이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의 무게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제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카페에서 마카롱 하나 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단순히 단 음식 하나가 아니라 "엄마는 네 편이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드라마의 이 설정이 현실적으로 무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상실에 걸린 성인 남성을 혼자 사는 복실이가 먹여 살린다는 설정, 솔직히 경제적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소비만 하는 루이는 복실에게 재정적 부채 그 자체입니다. 만약 루이가 드라마 속 황금 그룹 상속자가 아니라 진짜 평범한 기억상실자였다면, 복실이 루이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은 선의가 아니라 자기 파괴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 중 오락·문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는 현대인이 감정 조절의 수단으로 소비를 점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이 현상을 루이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로 증폭시켜 보여주면서, 결국 소비 너머의 인간관계와 진심이 더 오래가는 위로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마카롱을 사주는 행위 자체보다, 그 자리에서 "오늘 뭐가 제일 힘들었어?"라고 묻고 들어주는 시간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소비는 감정을 열어주는 도구일 뿐, 감정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드라마 쇼핑왕 루이는 결국 소비가 아니라 '누군가 내 편이 있다는 감각'이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루이가 기억을 찾는 과정이 상품 구매가 아니라 복실과의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지갑을 열기 전에 한 번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진짜 필요한 것이 물건인지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것, 이 드라마가 조용히 건네는 질문입니다.
현실판 복실
내가 만약 복실이였다면 처음부터 루이를 받아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도 복실이처럼 정 많고 남을 도와야 할 줄 알지만 이런 문제는 내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루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경찰서에 맡기거나 보호시설로 보내겠지만 동생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정보를 얻기 위해서 간헐적으로 만나는 방식으로 살았을 것 같습니다. 루이를 거두지는 않지만 루이가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그 사람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줄수도 있어 이러한 결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