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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워터멜론 (포기, 청아, 반짝이는 사람)

by eunhaji 2026. 5. 30.

 

드라마를 보다가 감동받아 눈물이 났습니다. 특히 청각장애인 청아를 위해 수어로 노래를 건네는 이찬의 장면에서는 제가 다 감동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낯선 언어를 배우고 손을 내밀어준다는 것,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런 마음들을 아주 따뜻하게 담아냈습니다.

포기하기를 포기

드라마의 주인공 하은결은 코다(CODA)입니다. 여기서 코다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혼자 듣고 말할 수 있는 아이를 뜻합니다. 은결은 가족과 세상을 이어주는 통역사 역할을 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꿈인 음악은 가족에게 죄책감 때문에 숨겨왔습니다. 은결이는 시간여행을 통해 1995년의 아빠 이찬을 만나 아빠와 엄마의 시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의 18살, 목소리 크고 웃음 많고 꿈 가득했던 그 시절을 저도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드라마 내내 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엄마에게 실제로 물어봤습니다. "아빠랑 결혼한 이유가 뭐예요?" 돌아온 답이 "아무도 안 데려갈 것 같아서"라고 하셨습니다. 드라마가 주는 감동과는 거리가 있는 대답이었지만, 웃음 뒤에 아빠의 성실함을 칭찬하시는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평소에도 "아빠가 참 성실하다"는 말씀을 곧 잘하셨습니다. 아마 저에게는 말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저희 부모님께도 아픈 청춘의 순간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잘 이겨내 결혼하여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생각한 대사가 있습니다. 이찬의 "포기하는 순간 승부는 끝이다"와 은결의 "포기하기를 포기했습니다"입니다. 기회는 당연히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이다 생각을 하기도 했고 마흔이 넘으니 자꾸 계산기부터 두드리게 됩니다. 해봤자 안 되지 않을까, 이 나이에 시작하면 늦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찬은 그런 계산 없이 진심 하나로 직진합니다. 밴드를 만들겠다고, 세경을 위한 무대를 열겠다고,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나이를 떠나 인생의 살아가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입니다. 한 달 전, 저는 컴퓨터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해 시험신청을 했었고 오늘 ITQ 엑셀 시험을 봤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만점 받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앉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덕분에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습관을 좀 버려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내가 청아라면

내가 만약 청아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제 성격상 듣지 못한다는 불편함 안에서 나를 일찍부터 지키기 위한 장치를 준비했을 것 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 나오는 청아는 계모 임지미한테 투명인간 취급하고 깊숙한 골방에 가두고 책이나 그림 같은 도구를 빼앗아 정신적으로 학대당했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소통인 수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입술 모양을 읽는 구화와 필담만을 강요하게 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는 아동학대를 당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계모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자란다면 녹음기를 상시 휴대하여 나에게 하는 말을 녹음하여 수시로 기록해 놓을 것입니다. 또한 CCTV를 계모 몰래 설치하여 신체폭력을 당한 증거까지 모아 아버지에게 진실을 알린다면 아마 일찍 계모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감옥에 가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못된 사람에게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참는 방향보다는 복수를 일찍 했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드라마 속 청아가 이찬이를 좋아하지만 장애로 인해 한 걸음 물러서야 했던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 저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장애가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한테 짐을 주는 것 같아 좋아해도 쉽사리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찬이에게 마음을 전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청아처럼 그림과 글을 좋아합니다. 잘하지는 않아도 표현전달은 할 수 있습니다. 스케치북에 "너의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무대 위에서 기타 치는 너의 모습에서 나오는 진동이 내 심장으로 느껴져서 너무 멋져 보였어. 늘 응원할게"라는 진심이 담긴 필담을 전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너를 좋아해"라는 말은 역시 먼저 못 할 것 같습니다.

반짝이는 사람들

온은유 캐릭터를 보면서 제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업의 실패를 경험한 아버지를 보면서 엄마에게는 안전한 공무원의 직업이 최고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공무원이 될 만한 지식도 자신도 없었고, 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 압박이 그냥 불편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니 엄마도 그게 최선의 사랑 표현이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지금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고 있는 제 모습이, 드라마 속 은유 엄마 최세경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직업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은결이 청아에게 건넨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누가 더 아픈지 재볼 저울은 없어. 네가 아프면 아픈 거야." 이 말은 부모 자식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아이의 감정을 제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드라마가 조용히 알려줬습니다. 또 남편도 떠올랐습니다. 야근하는 날 집까지 데려다주고, 스키장에서 보드를 잘 못 타는 저와 묵묵히 함께 있어줬던 모습들. 이찬처럼 말은 화끈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반짝이는 사람이라는 걸,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내 옆에 있어주었던 것이 더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끝나고 나면 뭔가 남아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저에게 꽤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 포기하지 않는 태도, 아이들의 삶의 주인은 아이들이라는 것,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반짝이고 있는지를 다시 보게 해 줬습니다. 아직 도전할 일이 많이 남은 마흔이지만, 이 드라마 덕분에 조금 더 씩씩하게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Lwi6KWtEyM&t=747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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