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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소문1 (결핍, 추매옥, 태도)

by eunhaji 2026. 5. 31.

 

주변을 돌아보면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똑같이 살아가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고, 다른 사람은 그 고통을 딛고 타인을 돌보는 사람이 됩니다. 웹툰으로 먼저 접했다가 드라마로 뒤늦게 보게 된 <경이로운 소문 1>은 인간의 결핍을 어떻게 표출할 것인지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마음의 결핍

드라마 속 악귀는 단순한 괴물이 아닙니다. 악귀는 인간의 결핍과 분노, 상처를 먹고 자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결핍이란 심리학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안전, 소속, 존중 욕구가 지속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생기는 심리적 공백 상태를 의미합니다.

카운터와 악귀 모두는 마음의 결핍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핍을 어떻게 채우는지 선택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카운터들의 본질은 연대와 공감으로 극복하는 존재라면 악귀들은 착취와 폭력으로 채우려 합니다. 또한 카운터는 약자를 보호하고 억울한 영혼을 구하는 상생의 목표를 가지지만 악귀는 오직 자신의 이익과 힘의 세력을 키우는 독식이 목표입니다. 지청신과 소문이를 얘기하자면 악귀 지청신은 고아원 출신으로, 채워지지 못한 결핍이 타인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표출된 인물이며, 소문은 7년간 부모님을 잃고 사고의 죄책감 속에 살아왔지만, 그 상처가 타인을 해치는 방향이 아니라 악귀를 잡는 카운터의 역할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결핍이 생길 때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소문이처럼 또는 청신이처럼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가 지청신처럼 나만의 이익만을 위해 선택했을 때 타인의 피해를 보면 후회를 안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카운터처럼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추매옥이라면

카운터들의 전투 방식은 일관됩니다. 물리적 타격으로 악귀를 무력화하고, 땅(융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제압하는 구조입니다. 이 방식이 드라마적 쾌감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저는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악귀가 인간의 상처와 분노를 숙주 삼아 자란다면, 그 뿌리를 건드리지 않는 제압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있을까요? 드라마 내 설정으로는 악귀를 소멸시키면 갇혀 있던 영혼이 해방되는 구조이긴 합니다. 하지만 현실 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트라우마 치료(trauma therapy)의 핵심은 외부 제압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 접근에 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란, 외상적 기억이 현재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심리적 원인을 직접 다루는 치료 방식을 의미합니다.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치유 능력자인 추매옥이 나옵니다. 제가 추매옥이라면 국수집 운영보다는 사회복지사나 심리상담사가 되어 카운터들이 물리적 전투 외에, 악귀에 잡힌 숙주의 무의식 속으로 진입해 상처의 원인을 건드리고 위로하는 방식도 상상해 봤습니다. 악귀가 자랄 수 없는 토양을 만드는 것, 쉽게 말해 제압이 아닌 구원의 접근입니다. 이는 단순한 드라마 비판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유효한 시각입니다. 범죄 심리학에서도 재범률(recidivism rate)을 낮추는 데 있어 처벌보다 사회복지적 개입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재범률이란 한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을 뜻합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마음의 태도

저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제가 아는 한 지인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라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하신 분인데,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학대 피해 아동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한 번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당해봤기 때문에 이 아이들의 고통을 알아.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 분을 통해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결핍을 직접 통과한 사람이 오히려 그 결핍의 무게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더 섬세하게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때 오히려 본인도 함께 치유된다고 하셨습니다. 

지청신도 고아원 출신이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같았는데, 그것을 타인의 영혼을 삼키는 방향으로 채웠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후배의 기획안을 가로채던 상사가 떠오르기도 했고, 이유 없는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던 학생들도 생각났습니다. 지청신은 드라마 속 악귀지만, 현실에서도 그 형태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권력을 통해, 폭력을 통해, 혹은 무관심을 통해 타인의 것을 빼앗는 방식으로 결핍을 채우는 사람들 말입니다.

소문처럼 살 것인가, 지청신처럼 살 것인가의 분기점은 결국 마음의 태도에 있습니다. 상처를 안으로 끌어안아 타인에게 열어두는 사람과, 상처를 밖으로 밀어내며 타인을 닫아버리는 사람. 그 차이가 드라마 내내 무겁게 쌓여 있었습니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결국 "인간이 약해질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를 묻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또한 악귀를 때려잡는 장면보다, 소문이 부모님 영혼을 구하고 "잘 컸으니 서로 미안해하지 말자"라고 말하는 그 한마디가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손 내밀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2ztYBjHn1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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