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시절 전학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행동도 없을 만큼 조용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더니 처음엔 단답으로만 대답하다가 점점 대화가 많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견디지 못해 전학을 온 아픔이 있었던 거였습니다. 약한 영웅 class2의 완결을 보고 나서 박후민 같은 친구가 학교에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약자를 보호할 줄 알고 뒤끝 없는 대장부 스타일에 동료를 지키는 의리까지 있으니 class1의 범석이도 박후민을 만났다면 또 다른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시은의 은장고등학교 전학
연시은은 수호가 심각한 뇌 손상으로 쓰러진 후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은장고등학교로 전학을 갑니다. 여기서 '일진 연합'이란 영등포 지역 내 여러 학교의 일진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이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은장고등학교를 제외한 다섯 학교가 속해 있었고, 이들의 수장인 나백진은 단순히 주먹만 쓰는 게 아니라 사업 수완까지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설정이 처음엔 좀 과장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부동산 투기에 재개발 사업까지 손댄다는 게 현실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학교 폭력 실태를 보면 단순히 주먹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조직적으로 돈을 갈취하거나 사업을 벌이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백진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지도력, 실행력을 바탕으로 인근 학교를 빠르게 통합시키고 사업을 벌여 돈을 벌었습니다.
시은은 전학 첫날부터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같은 반 일진 채만을 가볍게 제압합니다. 이후 은장고등학교의 넘버원인 박후민, 절친 고연탁과 함께 유성고 일진들과 싸우며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시은의 짝꿍이자 왕따였던 서준태는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시은을 보며 자신도 변하고자 용기를 냅니다. 이들이 함께 유성구 톱인 배지훈까지 이겨버립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학교에서 친구를 지킨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전학 온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제 자신도 표적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시은은 그런 두려움을 뛰어넘어 친구들을 지켜내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
나백진의 과거와 박후민과의 최종 대결
나백진은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누군가 자신을 멈춰주길 바랐습니다. 그의 인생은 온실 속 화초가 아닌 비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낸 절벽의 잡초 같았습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계부는 나백진을 폭행했습니다. 어린 백진은 계부에게 쫓겨나 늘 시간을 보내던 빌라 계단에서 맞은편 고층 건물을 올려다봤습니다. 불빛이 찬란한 그 건물은 마치 하늘 위의 성운 같았습니다.
여기서 '성운(星雲)'이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가스와 먼지 구름을 의미합니다. 백진에게 그 건물은 닿을 수 없는 꿈같은 존재였습니다. 백진은 사립 초등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다녔지만 거기서도 차별받았습니다. 1등을 해도 부정행위로 몰렸고, 담임은 어머니의 죽음을 재시험 날 아침에 전했습니다. 백진의 엄마가 사망한 후 계부는 보험금을 들고 잠적했고, 세상에는 더 이상 백진의 노력을 기뻐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백진의 과거가 너무나 외로웠고 괴물을 삼킨 아이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나백진과 연시은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서 갑니다. 시은은 사람을 지키는 데 힘을 쓰지만 백진은 아무도 믿지 않고 강함만을 추구하며 돈에 집착하는 외로운 아이였습니다.
연합과 은장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박후민은 나백진에게 최후의 싸움을 신청합니다. 2년 전 박후민은 고연탁을 구하기 위해 나백진과 싸웠지만 패배했습니다. 나백진은 박후민이 넘을 수 없는 산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박후민에게도 친구들이 있었고, 스스로 연합을 나온 금성제까지 은장 쪽으로 붙었습니다.
결투 당일, 박후민은 연합의 참모 전석현에 의해 납치당했지만 시은이 찾아냈고, 이후 박후민과 나백진의 1대 1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후민이 꽤 여러 번 유효타를 날렸으나 나백진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박후민은 점차 뜨거워지는 반면 나백진은 점차 차가워졌죠. 여기서 '유효타'란 격투기에서 상대에게 실제로 타격을 입힌 공격을 의미합니다. 결국 대결은 나백진의 승리로 끝났고, 나백진은 외쳤습니다. "이것으로 은장은 내 밑으로 들어온다."
결말 : 연시은의 반격과 나백진의 죽음, 그리고 수호의 회복
은장의 정신적 절대 지주 박후민이 패배하자 은장은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시은만이 차갑게 분석을 마치고 나백진 앞으로 나섰습니다. 인간의 버릇과 패턴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에 시은은 나백진과 박후민의 대결을 보며 나백진을 예습했습니다.
제가 실제로 써본 전략이기도 한데, 상대의 싸움을 미리 관찰하면 패턴이 보입니다. 시은은 나백진과 체급 차이가 컸기에 공업용 워커를 신고 점퍼 안에 방검복 조끼도 입었습니다. 붕대를 손목까지 감고 석고를 발라 주먹의 강도를 올렸습니다. 여기서 '방검복'이란 칼이나 날카로운 무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특수 의류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오직 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비겁하다는 말도 상관없었습니다.
시은은 나백진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이에 준태가 만든 조도 조절 장치에 불을 켜 나백진의 눈을 순간 멀게 하고 치명타를 날렸습니다. 여기서 '조도(照度)'란 빛이 비치는 밝기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쉽게 말해 얼마나 밝은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연합과 은장은 재왕이 조그만 소년에게 당해 무릎을 꿇고 피를 흘리는 장면을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백진은 기어코 다시 일어났고 결국 시은은 패배했습니다. 이변은 없었습니다. 영등포의 왕은 마지막까지 무패의 왕좌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나백진은 온몸을 다해 저항하고 끝내 내 발아래 쓰러진 시은을 보며 대체 무엇이 널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건지 궁금해합니다.
솔직히 이 결말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통 주인공이 이기는 걸로 끝나는데, 약한 영웅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나백진은 결투에서 진 은장을 조용히 돌려보낸 후 연합은 당분간 해산한다고 발표합니다. 사실 나백진은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누군가 자신을 멈춰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나백진은 폭풍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멈춰 세웠던 시은에게 감사했습니다.
연합과 은장의 대결이 끝난 후 박후민은 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이제 상관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후련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때 다리 아래에서 나백진이 시은을 불러냈는데, 백진은 트럭에 치여 사망해 버립니다. 나백진이 일반인보다 빛에 약했기에 트럭의 빛이 눈에 먼 백진은 순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백진의 죽음은 그가 가진 약점과 운명이 만난 비극적 결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연합은 해체되고 나백진은 사망했습니다. 이후 시은은 깨어난 수호를 찾아갑니다. 심각한 뇌 손상 때문에 깨어나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할 것 같다던 수호는 기적처럼 회복했습니다.
약한 영웅 class2는 연합의 우두머리인 나백진이 죽으면서 종결되는 듯 하지만 그 뿌리들이 있는 한 조직과 폭력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class3이 금성제 이야기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class2의 마지막은 수호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시은의 모습으로 약한 영웅은 마무리됩니다.
현실에도 박후민 같은 친구가 학교에 정말 많았으면 학교폭력이 줄어들고 좋은 추억으로 졸업을 맞이하는 친구들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의 학창 시절 그 친구에게 있어서 저는 박후민도 고연탁도 연시은도 아닌 그냥 제삼자 주변인이었습니다. 조금 더 그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마음까지 나눴다면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 후회를 하게 됩니다. 다른 여러분들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성인인 된 지금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인물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