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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시작, 오이영, 온기)

by eunhaji 2026. 6. 15.

서툰 시작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은 때로 숨이 턱 막힐 만큼 버거울 때가 참 많습니다.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보면서 유독 제 마음이 짠해졌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의사라는 번듯한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실수를 연발하는 1년 차 전공의, 즉 '초보 의사'들입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여도 머리는 떡지고 다크서클이 튄 채 환자의 고함과 선배의 꾸중을 견뎌내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닮아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제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서툴고 막막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무리 자격증이 많고 이론을 잘 알아도, 막상 진짜 사회라는 현실에 던져지면 누구나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사회생활 초년생 시절에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두렵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끼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리 나만 부족하고 못난 것처럼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매일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던 서툰 시절의 제가 드라마 속 미숙한 전공의들의 얼굴 위에 겹쳐 보여 마음이 참 시렸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라마가 전공의들의 성장통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포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의 직장생활은 드라마처럼 극적인 화해나 따뜻한 위로가 매번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오히려 훨씬 더 냉정하고 묵묵히 버텨내야 하는 날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자꾸 보게 되는 건, 그 미숙함 끝에 결국은 한 뼘 더 자라날 그들의 내일을 응원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서툰 첫걸음을 떼며 여기까지 걸어온 위대한 어머니들이자 직장인입니다.

내가 오이영이라면

작품 속에서 고윤정 배우가 연기하는 오이영이라는 인물은 참 매력적이면서도 안타까운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돈총각이자 선배인 구도원을 묵묵히 짝사랑하기도 하고, 산모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따뜻한 의사입니다. 하지만 치프 레지던트인 명은원 선배의 갑질과 억울한 오해에 직면했을 때, 이영이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병원을 나가려고 합니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극에 달했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공감이 됩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상사와의 갈등으로 가슴앓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였을 장면입니다. 만약 제가 드라마 속 오이영이었다면, 저는 그렇게 소리 없이 가방을 싸서 도망치듯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나이대의 이영이에게는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기제였겠지만, 인생을 조금 더 산 아줌마의 시선으로 보면 조금 더 영리하게 대처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라면 우선 눈물을 꾹 참고, 명은원 선배에게 단둘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정중하게 요청했을 것입니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오해가 생긴 부분이 무엇인지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내 입장을 먼저 설명했을 것입니다. 감정에 휘둘려 내 소중한 커리어와 꿈을 먼저 포기해 버리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가장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내 편, 이를테면 극 중 이영이를 붙잡아준 구도원 선배 같은 조력자나 동기들에게 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을 것입니다. 직장생활에서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혼자 속으로만 삭이다 보면 결국 마음의 병이 생기거나 극단적인 포기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내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되, 주변의 도움을 받는 법을 배우는 것도 어른의 중요한 기술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다행히 구도원 선배가 낌새를 채고 오해를 풀어주어 이영이가 돌아올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목소리를 내야만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우리 아주머니들은 오랜 삶의 지혜로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온기의 기적

드라마 속 병원이라는 공간은 매일같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치열한 곳이지만, 결국 그곳을 지탱하는 힘은 사람 간의 따뜻한 온기에서 나옵니다. 전공의들이 환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평생 가장 아찔하고도 가슴 벅찼던 첫째 아이 출산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완전전치태반'이라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어서 커다란 대학병원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무려 2시간이 넘는 긴 수술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수술 도중 갑자기 제 혈압이 너무 뚝 떨어지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이 안전을 위해 수면마취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맨 정신으로 그 기나긴 수술의 고통과 두려움을 온전히 버텨내야 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살이 떨리는 공포 속에서 제가 너무 힘들고 지쳐 "제발 마취 좀 해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머리맡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다급하게 제 손을 꽉 잡아주시더군요. 그러고는 따뜻한 눈빛으로 "어머님, 조금만 참으세요. 얼른 끝내 드릴게요"라며 저를 다독여주셨습니다. 그 긴박한 순간에 제 손을 타고 전해지던 온기와 그 말 한마디는, 얼음장처럼 차갑던 수술방에서 제 얼어붙은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는 따뜻한 난로와도 같았습니다. 그 고마운 의료진들의 진심 덕분에 저와 제 첫째 딸아이가 건강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미숙한 전공의들이 환자의 곁을 지키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그때 내 손을 잡아주던 따뜻한 손길이 겹쳐 보여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병원이라는 곳은 차가운 메스와 기계들이 가득한 곳 같지만, 결국 그 안을 채우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위로라는 것을 저는 인생의 큰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서툴지만 조금씩 슬기로워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을 깊이 응원하고 싶어 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vvOPaDP1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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