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학교 대위원으로 활동하고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 초대받은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묘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처음엔 아이를 위한 정보 공유 공간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서열이 느껴졌습니다. 드라마 '엉클'을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화면 속 로열 맘블리 클럽은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잘못된 사랑표현
드라마에서 지우가 겪는 고통은 신체적 폭력 그 이상이었습니다. 할머니 신화자는 학습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잠을 재우지 않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아이의 의사를 철저히 짓밟습니다. 이런 양육 방식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학대(Emotional Abuse)에 해당합니다. 정서적 학대란 아이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뜻하며, 신체적 폭력보다 눈에 잘 띄지 않아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제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잔소리가 숨막힌다고 느낄 날이 올 거라는 걸 압니다. 그럴 때 아이에게 숨구멍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친구들이 대피소였습니다. IMF시절 가난한 집안이 싫어 하루 가출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친구 한 명에게 얘기했고 그 친구집에서 잠을 잔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엄마한테 엄청 혼이나긴 했지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편안해졌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지우에게 삼촌 준혁이라는 숨구멍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훨씬 더 어두운 결말로 흘렀을 겁니다. 그래서 보통 자녀들이 사춘기가 오면 동물을 키운다는 소리가 이해가 됩니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드라마가 이전에도 있었지만, '엉클'이 조금 다른 점은 가해자가 명백한 악인이 아니라는 설정입니다. 신화자는 손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사랑의 표현이 잘못되었었을 뿐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계층차별
드라마에서 임대 아파트 주민을 분양 아파트 놀이터에서 쫓아내고, 이사 트럭을 보고 수군대는 장면은 과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친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자면, 실제로 특정 도시에서 임대 동과 분양 동의 외벽 색깔을 다르게 칠해 거주민을 구분했다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까지 비공식적으로 나뉘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라 과장이 아닌 실제 현실임을 압니다. 어른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제가 참석하는 대위원회 회의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엄마들끼리 의제를 미리 정해 오고, 회의는 사실상 승인 절차에 가깝게 진행되는 장면들이 그랬습니다. 로얄 맘블리가 완전한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다 제가 경험한 이야기들이 나오니 씁쓸하기도 하였습니다.
드라마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솔직히 말하고 싶습니다. 박혜령이 몰락하자 천다정이 새 다이아몬드로 등극하는 구조, 즉 사람은 바뀌어도 권력 구조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설정은 현실을 냉소적으로 반영하고 있지만,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차라리 로열맘블리를 아이들을 위한 몸소 실천하는 봉사활동같이 변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드라마
'엉클'이 많은 시청자에게 인생 드라마로 꼽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족의 의미, 꿈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아이를 향한 무조건적 사랑, 이 세 가지가 2시간짜리 영화보다 더 긴 호흡으로 설득력 있게 펼쳐집니다. 준혁이 지우의 학교 파랑새(학부모 대표)가 되어 아이들에게 합창을 가르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극에서 특별히 고마운 사람은 지후의 새엄마 김영아 였습니다. 숨 막혀 사는 지후에게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상식과 염치를 가진 어른이었습니다. 작은 틈새였지만 지후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삼촌, 그리고 새엄마의 작은 배려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방향을 상상해 봤습니다. 준혁과 준희, 그리고 유라처럼 뜻있는 이웃들이 서서히 신뢰를 쌓아가며 편견의 벽을 조금씩 허무는 과정, 즉 느리더라도 선한 연대(Solidarity)가 사회 구조를 바꾸는 방식을 보여줬다면 메시지가 더 오래 남았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좋은 장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점이 제게 가장 아쉽게 남은 부분입니다.
드라마가 담아낸 사회 문제를 의식하든 아니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지우의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정서적 학대와 계층 차별, 이 두 가지 키워드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결국 '엉클'은 온기 있는 가족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불편한 거울이기도 했습니다. 시청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아이 곁에서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느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