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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박연우, 정체불명 천명, 재능)

by eunhaji 2026. 4. 15.

 

한 가지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 환경이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 보고 깨달았습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해야 하고,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는 소통능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확실한 건 한 가지를 잘하면 기회는 반드시 생긴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디자이너가 현대 서울에 떨어졌는데, 박연우는 실력하나로 현대를 살아가는데 빠르게 적응해 가는 인물이였습니다. 

박연우 - 조선에서 온 디자이너

박연우는 조선 시대 한양에서 '호접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의복 디자이너입니다. 양반 집 외동딸이지만 집 안에 얌전히 앉아 있는 타입이 아니고, 하녀를 대동하고 직접 거래처를 관리하며 옷을 팔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인물에서 처음 눈이 간 건 그녀의 전문성이었습니다. 자수(刺繡), 즉 바늘로 천에 문양을 놓는 기술과 패턴 디자인 능력이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라 한양에서 소문난 수준이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시대를 뛰어넘어도 그 능력이 통한다는 점입니다. 연우가 현대 서울로 넘어온 뒤 맡게 되는 SH와 미담 브랜드의 콜라보 프로젝트에서, 그녀의 매듭 디자인과 자수 감각은 오히려 현대 큐레이터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패션 산업에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즉 디자인의 독창적 출처와 작가적 정체성은 브랜드 가치의 핵심 요소입니다. 현대 패션 시장에서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디자인은 쉽게 복제되고 소비됩니다. 연우는 조선 시대에 이미 자신의 디자인이 표절당하는 상황을 겪으며 이 감각을 키워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연우가 현대를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조선시대에 살았음에도 주어진 환경에 순응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던 인물이였기에 현대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연우를 보면서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그 어떤 한 가지도 깊이 파고들어 전문성을 만들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주어진 공부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던 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연우의 태도를 보며 한 번은 저렇게 당차게 실력을 뽐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체불명 천명, 그리고 황이사의 복수

이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천명'이라는 존재의 설정이 아쉬웠습니다. 천명은 시간을 멈추거나 흐르게 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연우의 타임슬립을 주관하는 역할을 합니다. 타임슬립(Time-slip)이란 주인공이 특정한 계기로 다른 시대로 이동하게 되는 서사 장치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꾸준히 활용되어 온 장르 코드입니다. 문제는 천명은 사람인지, 도깨비인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존재였으며, 어떤 기준으로 시간을 조정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끝까지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인물은 타임슬립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보다는, 이야기가 막힐 때마다 등장해서 방향을 바꿔주는 편의적 장치에 가까웠습니다. 좀 더 완벽한 서사를 위해서는 인물들의 동기, 목적 등 상세한 배경설명이 나와야 하는데 천명은 지금도 사람도 신도 아닌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불편한 장면이 있습니다. 강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황 이사의 아내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했던 장면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황명수 이사는 원한을 품고 SH그룹에 충성을 다하며 복수를 하려 합니다. 가족을 죽였다는 원망이 컸고 그 원망은 복수로 이어집니다. 한 명의 이기심이 많은 사람들을 주저앉힐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우리의 행동과 언어에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씁쓸했는데, 그냥 드라마적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의사들은 다릅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가 아닌 응급환자가 우선순위입니다. 현실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이 있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꾸준히 발견하는 재능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우리 아이들 생각을 했습니다. 연우처럼 한 가지를 확실히 잘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은 솔직히 모든 부모가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는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작은 부분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큰아이는 학습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숙제를 미룬 적이 없고 선생님 말씀을 반드시 지키고 꾸준히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습관 형성 이라고 볼 수 있는데, 습관 형성이란 반복된 행동이 별도의 의사 결정 없이 자동으로 수행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심리학적으로는 이 상태가 장기적 성취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에서도 청소년의 학업 지속성에서 학습 습관이 학습 능력 자체보다 더 강력한 예측 변수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둘째 아이는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해냅니다. 이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높은 유형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내면의 믿음을 뜻하는 개념으로, 행동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이론의 핵심 용어입니다. 연우가 SH 전시회에서 30분 만에 의상을 재구성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자기효능감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잘해라"는 말보다 "네가 좋아하는 걸 계속해봐"라는 말이 훨씬 더 유효합니다. 저는 어릴 때 누군가 그런 말들을 해줬으면 달라졌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기회는 있었는데 꾸준함이 없었고, 강점을 쌓기보다 주어진 것만 소화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에게는 경험을 먼저 시키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고 있습니다.

열녀박 씨 계약결혼뎐은 완성도가 들쑥날쑥한 부분이 분명 있는 드라마입니다. 천명의 존재감은 아쉬웠고, 강 회장의 행동은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연우라는 인물이 보여준 모습에서 우리도 충분히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꾸준히 개발해 간다면 분명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S53OC2J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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