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게 고민은 말하고 싶은데 내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날이 있으면 강아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합니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강아지가 꼬리는 흔드는 모습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전부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졌고, 어떤 날은 말하다가 스스로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월수금 화목토'를 보면서 강아지와 대화를 나누었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가짜 결혼을 직업으로 삼은 여자가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 우리가 일상에서 외면하던 질문들이 제법 많이 숨어 있었습니다.
계약결혼
드라마 속 최상은의 직업은 계약결혼 대행업입니다. 결혼이 필요한 고객에게 일정 기간 배우자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 제공자를 뜻합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지만, 이와 비슷한 서비스는 실제로 운영 중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식 하객 대행과 친구 대행입니다. 하객 대행이란 결혼식이나 행사에 지인인 척 참석해 자리를 채워주는 서비스이고, 친구 대행은 일상적인 대화 상대나 동행자가 필요한 사람에게 유사 친밀감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저는 처음 이 서비스들을 접했을 때 다소 낯설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도 강아지한테 하소연하면서 얻었던 그 위로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걸 이용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25년 기준 전체 가구의 약 36%에 달하며, 사회적 고립감을 호소하는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서적 결핍, 즉 감정적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 상태가 쌓일 수밖에 없고, 이런 서비스는 그 공백을 일시적으로 채워주는 기능을 합니다.
다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이런 서비스에 과하게 의존하게 되면 사회적 자기 효능감, 즉 실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질 수 있습니다. 진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마찰이나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없어질 것이며, 서비스가 종료되는 순간 더 큰 고립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서비스는 치료제라기보다는 진통제라는 표현이 더 가깝습니다. 삶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용기를 갖는 방법과 진실한 소통을 배워야 합니다.
진실함이 보여주는 변화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지점은 최상은이라는 인물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정지호는 극단적인 과묵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타인과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어할 만큼 사회성이 결여되었지만 상은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의 기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상은이는 그의 침묵을 존중했고 안전하다는 신뢰를 주었던 것이 지호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해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에게는 엄청난 사랑을 받지만 가족 안에서는 외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상은이는 이런 이면을 봐주었고 휴식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법을 보여줌으로써 강해진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가장 큰 변화는 최상은 본인도 이 과정에서 변한다는 것 입니다. 타인의 요구에 맞춘 완벽한 인형으로 살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자신의 감정은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12번의 계약결혼을 반복하면서 정작 자신이 진짜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봤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상은이의 공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호를 만나면서 상은이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본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지호와 함께 장을 보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면서 진짜 사랑을 향해 처음으로 자신을 열게 됩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가졌는지 지호가 묻기도 합니다. 결국 누군가의 가짜아내가 아닌 최상은으로 살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심어준 지호와 결혼하면서 드라마는 끝이 납니다.
저도 상은이처럼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팀장님이 느끼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을 때 간식이나 영양제를 종종 선물로 드립니다.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큰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직장 속 모든 팀장님들은 강인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두려울 때도 많고 버거운 순간들이 늘 마주하는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팀장님을 저는 말로 위로할 자신은 없어서 선물로 담담히 위로를 전했던 것뿐입니다.
상은이 지호와 해진에게 한 것도 결국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가르치거나 고쳐주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결혼과 이혼 - 결코 가볍지 않다
드라마를 통해 결혼이라는 것이 가볍게 보일까 봐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율이 줄어드는 나라에 이런 부분들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혼인신고는 법적인 효력을 가진 공문서인데 12번의 이혼기록이 서류에 찍힌다는 것이 다소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이었습니다. 젊은 시청자들에게 결혼과 이혼이 너무 가볍게 보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드라마 월수금 화목토는 가짜 결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정서적 결핍과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결혼과 이혼을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진짜 자신의 맨얼굴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는다는 주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서적 결핍을 서비스로 채우는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일시적 대역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줄 수 있는 진짜 관계임을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시간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저녁의 밥상처럼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부족한 부분까지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저는 행복합니다. 이 행복을 제 주변사람들에게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상대의 지위나 배경과 상관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고, 당신 지금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주변에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행동으로 간식 하나부터 시작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