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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애하는 도적님아(운명, 임사형, 은조)

by eunhaji 2026. 7. 9.

 

영혼이 바뀐 운명

드라마 속 두 주인공 홍은조와 이열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영혼이 뒤바뀌며 서로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됩니다. 낮에는 서녀이자 의녀로, 밤에는 백성을 구하는 의적으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은조의 영혼이 대군의 몸으로 들어가고, 반대로 외로운 대군의 영혼이 거친 의적의 몸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참 흥미진진 하였습니다. 이를 보며 부부라는 인연으로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제 남편과의 일상이 자연스레 겹쳐 보였습니다. 가끔 직장에서 지치고 힘든 표정으로 퇴근하는 남편을 보면 바깥일이 얼마나 힘들기에 저러나 싶다가도, 집안일과 초등학생 두 아이의 양육을 혼자 도맡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낼 때면 당신이 내 몸으로 딱 하루만 살아봐라 하는 야속한 마음이 불쑥 들곤 합니다. 만약 드라마처럼 남편과 제 영혼이 일주일만 딱 바뀐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남편은 아침부터 아이들 깨워 밥 먹이고 학교 보낸 뒤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테고, 저는 남편 대신 직장에 출근해 무거운 책임감과 업무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견뎌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서로의 자리에 직접 서보는 것만큼 상대방의 고충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유쾌한 영혼 체인지를 보여주었지만, 현실의 우리 부부에게도 서로의 영혼을 바꾸어 바라보는 듯한 깊은 이해와 따뜻한 배려가 절실히 필요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임사형

극 중 부드러운 얼굴 뒤에 거대한 흑심을 품고 권력을 향해 잔혹하게 질주하던 도승지 임사형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며 참 씁쓸하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만약 그 막강한 권력의 중심이자 비뚤어진 욕망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임사형의 자리에 제가 있었다면, 저는 진작에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전혀 다른 평범한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남을 속이고 죄 없는 이들을 짓밟아가며 얻어내는 화려한 세도가의 자리가 과연 내 영혼과 소중한 가정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왜 몰랐을까요. 나라면 타인의 눈물을 딛고 서서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차가운 괴물이 되기보다, 내 손으로 정직하게 일구는 소박한 행복의 가치를 먼저 소중히 여겼을 테지요. 매일 아침 성실하게 출근해 직장 동료들과 소소하게 웃으며 일하고, 퇴근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 들고 들어가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커다란 기적이고 축복인지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남들의 거짓된 우러름을 받는 껍데기뿐인 성공보다는, 비록 조금 부족하고 초라할지라도 동네 모임에서 이웃들과 편안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정을 전할 수 있는 정직하고 떳떳한 부모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값진 인생이라 믿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권력과 재물의 유혹이 눈앞을 가릴지라도 내 마음의 평화와 소중한 내 아이들의 미래를 저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만든 은조

만약 제 영혼이 진짜 천하제일 도적이자 의녀인 홍은조의 몸속으로 쏙 빙의된다면, 제 본래 성격대로 아주 정겹고 유쾌한 휴먼 사극을 새로 써 내려갔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담을 넘고 지붕을 날아다니며 칼을 휘두르는 험악하고 무서운 의적 노릇은 무서워서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머니 특유의 엄청난 오지랖과 따스한 정, 그리고 혜민서 의녀의 손재주를 살려 조선 최고의 참견쟁이 의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탐관오리의 곳간을 털어 재물을 훔치는 거창한 도적질 대신, 억울하게 눈물 흘리는 백성들을 마주하면 우리 집 초등학생 아이들을 달래듯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불량한 이들을 만나면 매서운 채찍을 휘두르는 대신, 직장 철부지 후배를 야단치듯 매서운 눈빛으로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네 부모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냐며 구수한 잔소리 폭탄을 투하해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집에서 남편의 실수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잔소리하듯, 날카로우면서도 애정이 듬뿍 담긴 말로 악인들이 지은 죄를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만들고 진심으로 참회할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바른길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차가운 칼날 대신 따스한 밥 한 끼와 무서운 엄마의 잔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진짜 사람답게 변화시키는 아주머니 의적 홍은조, 생각만 해도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다정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CjEtJvbc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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