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이번생도 잘 부탁해'의 주인공 반지음은 천년 전 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복수심 때문에 19번의 환생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생기는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반지음의 처절한 복수심이 문뜩 이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1981년 독일에서 7살 딸을 성폭행 살해한 범인이 법정에서 모욕적인 진술을 늘어놓자, 엄마는 핸드백에 숨겨온 권총으로 범인에게 8발을 발사했습니다. 범인은 즉사했고 엄마는 징역 6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분노를 보여줍니다. 만약 제 아이에게 누군가 해를 끼친다면 저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저 또한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지음의 복수의 깊이는 편히 잠들지 못하고 환생이라는 삶을 살아갑니다.
환생
드라마 속 반지음은 19회 차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환생(Reincarnation)이란 죽은 뒤 다시 태어나되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음의 첫 번째 생은 천년 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그녀는 염색 장인으로 살았고, 병약한 언니를 살리기 위해 신성한 무령(巫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무령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데 쓰이는 신물(神物)로, 당시 사회에서는 개인의 목숨보다 하늘의 제사가 우선입니다. 무당 천운에게 붙잡힌 지음은 "언니는 때를 놓치면 죽습니다"라고 애원했지만, "하늘의 제사도 때가 있다"는 냉정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언니는 죽고 그 순간 지음은 "죽일 것이다"는 저주 같은 맹세를 남겼고, 이것이 19번 환생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보면서 과거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족쇄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출처: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서하의 PTSD
반지음은 매 생마다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생에서는 춤을 추고 노래를 만들었고, 어떤 생에서는 연인을 잃고 또 다른 생에서는 아이를 잃었습니다. 전생 기억 보유자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한 번만 겪을 슬픔을 19번이나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됐습니다. 솔직히 19번의 인생을 산다는 건 형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18회 차 반지음은 윤주원으로 살면서 서하를 만났고 그를 보호하다 죽게 됩니다. 서하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자신을 감싸준 주원 누나가 죽었고 그 충격으로 청력에 문제가 생기며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이후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떠난다"는 비관적 세계관을 갖게 됩니다. 뒷좌석에 타지 못하고 운전도 못하는 그의 모습은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상입니다. PTSD란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경험한 후 반복적으로 그 기억이 떠오르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정신질환입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는 20대에 야근 후 귀가하던 중 놀이터에서 수상한 남성에게 위협받은 적이 있습니다. 간신히 도망쳤지만 그날 접질렸던 발목은 지금도 빠르게 뛰면 아픕니다. 그 이후로 저는 밤에 놀이터를 절대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Trauma)입니다. 트라우마란 심리적 충격을 동반한 사건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현재 - 지나간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
드라마 후반부, 지음이는 첫 번째 생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습니다. 천년 전 자신과 언니를 죽인 원수가 바로 지금 사랑하는 문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서하는 죽인 게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감싸준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원수는 무당 민기였고, 지음은 착각 속에서 천년을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음의 선택입니다. 진실을 알게 된 지음은 민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23회 차 인생을 그런 마음 가지고 살았어요. 끔찍한 감정이 버겁고 싫긴 해요. 그런데 그게 뭐라고요? 다 지난 일인데." 이 대사가 저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수많은 생을 살아온 지음에게 천년 전 원한은 더 이상 현재를 지배할 힘이 없었던 겁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저주를 끝내려면 그녀는 모든 전생의 기억을 잃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초원, 애경, 그리고 서하와의 추억까지 전부 사라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음은 기꺼이 선택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결말이 멋있어 보였지만 조금 아쉬웠습니다. 19회 차 인생을 살아온 지음이라면 기억을 지우지 않고도 슬픔을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음이라면 분명 현재를 완벽하게 살아내는 단단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기억을 잃은 지음은 평범한 자동차 엔진 연구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고, 서하는 약속대로 그녀를 찾아갑니다. 이번엔 서하가 전생을 기억하고 지음을 찾아온 겁니다. "처음 본 게 아니면요?"라며 고백하는 서하의 모습은 정말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음 이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서하에게 이렇게 고백했을 것 같습니다. "서하야,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번 생이 처음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과거의 상처에 갇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를 정면 돌파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처럼 밤 놀이터를 피해 다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로서 한 가지 간절히 바라는 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1981년 독일 엄마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수심에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가기보다는 한 번뿐인 귀한 인생, 우리 모두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