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마지막 소원
삶의 끝자락에서 남겨진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MBC 드라마 <일당백집사>를 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고인의 손을 대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장례지도사 백동주와 생활 심부름 업체 직원 김집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선다. 세상과 이별한 이들의 못다 한 사연을 듣고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은 매 순간 깊은 울림을 준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따뜻하고 휴머니즘 넘치게 풀어낸 점이 마음을 울린다. 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활짝 웃으며 등교하는 아이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녀를 챙기려 애쓰는 학부모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을 보며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남편과 조잘거리는 초등학생 두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감사함이 가슴 깊이 밀려온다. 드라마 속 고인들도 어쩌면 평소에 누렸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토록 그리워했을지 모른다. 친한 모임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 때나 부모님 댁에 들러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때도 드라마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사랑을 미루지 말고 지금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고인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단발성 에피소드로 나열될 때는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남겨진 이들이 슬픔을 딛고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살아있는 우리가 마주하는 매일은 누군가가 그토록 바랐던 내일이라는 사실을 다정하게 일깨워준다.
선택의 갈림길
드라마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 중 하나는 백동주의 아버지 백달식이다. 길을 가던 중 위급한 만삭의 임산부에게 건물 외벽 부식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몸을 던져 목숨을 구하지만, 정작 본인은 머리를 크게 다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숭고한 희생이었고 세쌍둥이와 임산부의 목숨을 구한 의로운 행동이었지만, 홀로 남겨진 딸의 슬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만약 그 상황에 내가 백달식이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정의로운 마음이 있기에 위험에 처한 만삭의 임산부를 그대로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타인의 위급함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본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 키워야 할 아이들이 있고 지금보다 더 어렸다면, 선뜻 몸을 던지지 못했을 것 같다. 내 아이들을 책임지고 길러야 하는 엄마이기에 순간적으로 주저했을 것이다. 가정이 있고 지켜야 할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목숨과 아이들의 미래 사이에서 깊은 번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마주할 때가 있다. 억울한 상황에 처한 동료를 도와주고 싶거나 불합리한 일에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내 행동이 가족이나 내 삶에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면 망설이게 된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연로하신 부모님이 떠올라 현실적인 타협을 하게 되기도 한다. 백달식의 희생은 고결하고 아름답지만, 남아있는 가족의 고통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라리다. 드라마가 전달하는 극적인 영웅주의도 감동적이지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적인 갈등과 주저함을 조금 더 섬세하게 그려냈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내가 백동주라면
내가 만약 고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백동주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처음에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마지막 인사를 전해주는 일이 귀찮고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죽은 이들과 소통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살아갈 기회와 용기를 준다면, 나 역시 기꺼이 그들의 소원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유가족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본다면,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숭고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부모님이나 아이들에게 뜻하지 않은 위안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이라도 내 가정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삶과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는 선을 넘어가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가족은 내 모든 활동의 뿌리이자 가장 소중한 울타리다. 남편과 두 아이가 불안해하거나 직장 생활과日常이 무너질 정도라면 경계를 정해두었을 것이다. 드라마 속 백동주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고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은 가슴 뭉클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너무 극단적인 위험으로 내모는 설정이 현실과 다소 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타인을 향한 한없는 봉사와 선의도 좋지만,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지키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나누는 선의가 더욱 건강하고 오래갈 수 있다.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동시에,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과의 소중한 일상을 다시 한번 다독이게 만드는 따뜻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