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수강 신청을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드라마 속 대치동 학원가 풍경을 보는데 그 새벽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일타 스캔들은 사교육 경쟁의 현실을 꽤 날카롭게 담아낸 드라마입니다. 그 안에서 웃고 울고, 때로는 씁쓸했던 이유를 이 글에 솔직하게 풀어봤습니다.
사랑의 줄서기
드라마 초반, 학부모들이 일타강사 수업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벽부터 번호표를 기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자마자 현실과 똑같다는 생각과 함께 사실 저도 새벽에 줄은 선 경험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아이 수영 수강 신청 때였습니다. 공공체육관 수영 강습은 사설 수영학원의 월 16만~20만 원에 비해 5만 원 미만으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거기에 다자녀 혜택인 다둥이카드를 적용하면 수강료가 더 낮아지기 때문에 경쟁이 상당히 치열합니다. 다둥이카드란 일정 수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에 지자체가 발급하는 복지 카드로,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혜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날 밤 잠을 설치면서까지 준비하여 새벽 6시 반에 도착했는데 이미 저보다 먼저 온 사람이 여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결국 수강 신청에 실패했고, 그때의 허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한번 등록한 수강생이 자리를 잘 내놓지 않고, 취소가 나더라도 많아야 세 자리 정도라 그 자리를 노리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저는 그 한 번의 실패 이후 더 도전하지 못하고 결국 사설 학원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속 행선이 해이의 수강 신청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남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번호표를 손에 쥐는 그 장면에서 제가 더 안도했을 정도입니다. 줄서기라는 행위 자체가 자녀를 위해 뭔가라도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모습이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성적표
드라마 속 최치열은 대한민국 입시 시장 상위 0.01% 수준의 몸값을 자랑하는 일타강사입니다. 여기서 입시 시장 몸값이란 단순 강사료가 아니라 강의 콘텐츠 판매, 전속 계약, 광고 등 모든 수익원을 합산한 시장 가치를 의미합니다. 현실에서도 상위권 강사의 연 수익은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꽤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평소 정승제 선생님과 이지영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두 분 모두 단순히 문제 푸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이유와 삶의 태도까지 함께 이야기해 주십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두 분의 영상을 종종 보여주는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분들 영상을 보다가 힘을 얻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과정,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 최치열은 섭식 장애(Eating Disorder)와 불면증으로 고통받습니다. 섭식 장애란 스트레스나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식사 행동에 이상이 생기는 정신건강 문제로, 장기간 방치하면 심각한 영양실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일타강사의 삶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수강 전환율(Conversion Rate)입니다. 수강 전환율이란 강의를 체험하거나 관심을 보인 학생 중 실제 정규 수강으로 이어진 비율을 말하는데, 이 수치가 강사의 시장 가치를 직접적으로 좌우합니다. 경쟁 강사와의 점유율 싸움이 매 모의고사 시즌마다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강사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노력과 결과가 아이들에게 좋은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드라마를 보고 나서 아이들에게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해 줬습니다. 건강한 성적표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어떤 성취도 건강을 잃으면 걸어갈 수 없기에 쉽지 않지만 나를 지켜가며 살아가기를 애기해주었습니다.
부모의 숙제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인물은 사실 변호사 장서진의 첫째 아들 희재였습니다. 엄마의 과도한 통제와 교육 집착으로 인해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인물인데, 그 설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수많은 부모들이 어쩌면 자녀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개입하는 과잉보호 환경을 주고 있음을 깨달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양육은 아이의 자율성과 회복탄력성 발달을 저해하며 실패와 어려움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이한테 이런 환경을 주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희재의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을 보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희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설명되는데, 다시 사회로 나오는 과정이 너무 짧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진심 어린 사과, 관계 회복, 그리고 심리 치료를 거쳐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오는 서사가 더 풍성하게 담겼다면 드라마를 보는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메시지와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면 동이의 복수극 설정은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쇠구슬 테러, 납치, 사망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현실 공감보다는 장르적 자극에 치우친 느낌이 강합니다. 사교육 현실을 진지하게 담는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스릴러에 의존하는 모습은 살짝 아쉬웠습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웃음과 로맨스가 전부가 아니라, 현실 부모로서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서기를 할 때도, 아이 성적에 일희일비할 때도, 혹시 내가 저 드라마 속 어딘가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게 되며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무엇을 먼저 실천해야 할지 숙제로 남았지만 잘 풀어보도록 남편과 대화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