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복도에 놓인 중환자실 문 앞에서 누군가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 말입니다. 저도 급성췌장염과 담낭 제거 수술로 한 달간 입원 및 수술 했을 때 남편과 부모님께서 기도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조명가게라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가족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공포물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 경계에 선 사람들의 간절함을 다룬 이야기였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
드라마 속 조명가게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림보(Limbo) 공간입니다. 여기서 림보란 가톨릭 신학 용어로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영역을 뜻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들이 의식 속에서 머무는 경계 지점으로 표현됩니다. 현민, 지웅, 선혜, 현주 이 네 사람은 모두 362번 버스 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입니다.
저도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이 평온함 보다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의식은 있는데 몸을 못 움직이고, 간호사 목소리가 들리는데 대답을 못 하는 그 순간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지웅이가 끝없이 반복되는 골목길에 갇혔던 장면이 바로 그런 상태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골목길 끝에 있던 빌라의 한 방은 사실 중환자실 병상이었고, 불이 들어온 집은 아직 생명이 남아있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조명가게 주인 원영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채 등장합니다. 그의 눈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눈을 마주친 대상을 소멸시키거나 자신의 능력을 전수할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이를 환자가 살아날지 죽을지 결정하는 의료적 판단의 은유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 조명가게에서는 코마 상태에 빠진 영혼들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 들려야 하는 곳이며, 스스로 자신의 전구를 손에 넣어야 살 수 있는 곳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의 가족들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존엄하게 보내드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입니다.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 본인의 사전 의사가 있거나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하지만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결정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드라마에서 환자 뒤에는 그들을 살리려는 죽은자들이 있었습니다. 지영이는 현민이의 연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매일 버스 정류장에서 현민을 기다리면서 조명가게를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버스기사 오승원은 사고에 대한 책임감에 피해자들을 찾아가 깨우려고 노력합니다. 유희는 현주의 엄마로 사고 당시 현주를 끌어안아 살렸지만 사망하게 되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현주를 매일같이 조명가게 보내는 노력을 하며, 마지막 혜원이는 선혜의 언니로 선혜를 보호하다 사망하지만 선혜 역시 동생 혜원이를 조명가게로 들여보냅니다. 죽은 자들이지만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은 죽은자나 산자 둘 다 똑같다고 보여집니다.
조명가게 - 희생과 희망
제가 수술대에 오르기 전 남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슬픔과 걱정이 뒤섞인 그 표정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급성췌장염의 원인은 담낭에 있던 담석이 구르면서 췌장을 건드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수액으로 췌장염증수치를 낮추고 담낭 절제술을 받았는데 한 달간 입원 및 수술을 하면서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가 길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 돌보느라 집에 있어야 했고 매일 밤 제 옆에 있어주지 못해 혼자 울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담담히 전하는데 미안함에 눈물이 나고 말았습니다.
유희의 선택이 이런 마음이었는지 버스 사고 순간 남은 힘을 다해 딸 현주의 머리를 감싸고 자신은 죽음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딸이 코마 상태에 빠지자 딸을 살리고자 매일 조명가게로 현주를 보내 전구를 사 오게 했습니다. 조명이 켜져 있어야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중환자실 간호사들도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걸고 음악을 들려주는데, 이는 청각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간호사 영지가 환자들에게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려준 것도 이런 의료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반대로 선혜는 언니 혜원과 함께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조명가게에서 받은 전구를 스스로 깨뜨리며 삶을 포기한 겁니다. 누군가는 생명을 포기한 이기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선택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감히 얘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혜원이 보여준 헌신이 선혜에게는 혼자 살아가는 삶보다 소중했던 겁니다.
제가 입원했을 때 옆 병상에 계셨던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분 자식들이 매일 번갈아 가며 병상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기다리실까' 싶었습니다.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 판정을 받은 환자 중 일부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로 드물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그 희박한 가능성에 가족들은 매달립니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현민의 경우가 흥미로웠습니다. 코마에서 깨어났지만 지영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해 보니 "트라우마가 심하면 그 부분만 기억 상실이 올 수 있다"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 있었습니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환자 중 일부는 사건 당시 기억을 선택적으로 차단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PTSD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후유증으로, 기억 회피가 주요 증상 중 하나입니다. 현민이 지영이를 잊은 건 그녀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드라마 결말에서 지영이는 현민을 이승에 남겨두지 못하고 다시 찾아갑니다. "함께 있자"며 손을 내미는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살려놓고도 자기를 기억 못 하니 배신감을 느낀 겁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엄마이기에 유희의 선택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제 목숨을 내어주더라도 아이를 살리고 싶은 게 부모 마음입니다. 이런 비극이 오지않기를 바라며 오늘 밤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엄마보다 먼저 하늘나라 가면 안된다.
생명 - 꺼지지 않는 조명
조명가게는 결국 희망의 상징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가족들이 있기에 코마 환자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보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영역입니다. 버려서도 안 되고 강요해서도 안 되는 고귀함이 있습니다. 논리와 감정으로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며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의 질과 존엄성이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으로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환자에게 더한 고통이라 연명치료 중단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생명 그 자체적으로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아닌지 해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을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남편은 장기기증 서약을 청년 때부터 했습니다. 대단한 결단이며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후회하지 않냐는 물음에 결단코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남편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조명가게는 공포드라마가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을 통해 생명과 사랑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