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선영
극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단연 가성호 회장의 의붓딸, 가선영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아버지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던 그 냉혹한 모습을 보며 다들 혀를 내두르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만약 내가 가선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토록 피비린내 나는 폭주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재벌가라는 거대한 배경과 연극영화과 교수라는 번듯한 사회적 지위가 이미 내 손에 있는데, 왜 굳이 무리수를 두며 범죄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라면 그 많은 유산을 독차지하려 욕심부리기보다, 이돈 변호사 같은 전문가를 내 편으로 포섭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내 지분을 확실히 챙기는 영리한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새어머니가 될 뻔한 영란과도 굳이 칼날을 겨누며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계약 결혼의 허점을 찾아내어 조용히 합의금을 쥐여주고 내보내는 편이 훨씬 우아하고 안전했을 것입니다. 결국 가선영을 파멸로 이끈 것은 통제하지 못한 과도한 탐욕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드라마 속 재벌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평범한 아주머니들의 삶에서도 이런 욕망의 제어는 늘 중요한 숙제입니다. 아이들 학업 성적에 대한 지나친 욕심, 남편의 출세에 대한 과한 기대, 혹은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마음들이 결국 우리 마음속의 가선영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내 손에 쥔 소중한 행복들이 보이는데, 더 큰 것만 바라보다가 정작 소중한 가정을 지옥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이 드라마를 보며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김영란
주인공 김영란은 살기 위해 '부세미'라는 가짜 가면을 쓰고 무창의 한 유치원 교사로 들어갑니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영란은 특유의 단단함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며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제 성격대로 이 드라마를 다시 각색해 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을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 매사에 원칙과 기준을 철저히 지키는 성격입니다. 흐트러짐 없이 정해진 도리를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김영란이었다면, 아무리 억만금의 유산이 걸려 있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신분을 도용해 유치원 교사로 위장하는 거짓말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장 취업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 순수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기만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라면 가성호 회장과의 계약 단계에서부터 제 진짜 신분을 밝히고, 당당하게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입니다. 가선영의 위협이 다가올 때도 숨어 다니며 가짜 삶을 연기하기보다는, 경호원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가선영의 악행 증거를 처음부터 샅샅이 수집했을 것입니다. 이돈 변호사를 철저히 비즈니스 파트너로 고용해 법적 방어벽을 세우고, 언론이나 수사 기관에 가성그룹의 비리를 당당히 제보하는 식으로 각색했다면 어땠을까요. 로맨스 릴러 특유의 애틋한 '고구마' 구간은 조금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원칙을 고수하는 당찬 여성 서사로서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와 깊은 신뢰감을 주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현실의 부세미
드라마에서 부세미가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겪는 애환과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은, 제가 현실에서 겪는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고스란히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르며 제 나름의 '가면'을 씁니다. 집에서는 철없는 남편의 아내이자,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일터에 나가면 사적인 감정을 완벽히 배제한 채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하는 직장인이 됩니다.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사나 까다로운 거래처를 만날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꾹 참고 웃는 낯으로 대하곤 합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남편의 잔소리를 듣거나,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알림장을 검사하고 숙제를 챙기다 보면 정말 '나만의 생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드라마의 극단적인 설정 자체는 다소 비판하고 싶습니다. 시청률을 위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사건과 배신을 남발한 감이 없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옹호하게 되는 이유는, 가짜 신분 속에서도 진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며 성장해 나간 인물들의 감정선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주머니들도 가끔은 내 이름 석 자 대신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살아가며 내 진짜 모습을 잃어버린 듯한 서글픔을 느끼곤 합니다. 드라마 속 영란이 거친 풍파를 겪은 후 결국 전동민의 따뜻한 품에서 자신의 진짜 행복을 찾았듯, 우리 역시 팍팍한 일상 속에서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 진짜 내 삶의 가치를 찾아야 마땅하겠지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신 모든 어머니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