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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치킨 (창업현실, 연대의힘, 자영업 생존)

by eunhaji 2026. 4. 28.

 

퇴직금 털어 치킨집 차렸다가 1년 만에 문 닫는 이야기,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직장 선배가 똑같이 겪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2019년 MBN에서 방영된 드라마 최고의 치킨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차린 박최고, 목욕탕을 지키다 알바로 전락한 서보아, 미슐랭 스리스타 출신 셰프 앤드류 강 세 사람이 엮이며 만들어가는 성장 이야기입니다. 보고 나서 남은 건 살찐 몸과 몇 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창업의 현실

드라마에서 박최고는 아무런 요리 경력 없이 지방 소도시로 내려와 치킨집을 엽니다. 처음엔 재료도 제대로 다듬지 못하고, 닭 손질 하나 못 한다고 앤드류에게 혼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줄이 서는 가게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창업 준비가 충분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보통은 드라마가 보여주는 창업의 속도는 현실과 꽤 다릅니다.

제가 아는 선배는 마포구 쪽에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열었습니다. 프랜차이즈란 본사가 브랜드, 레시피, 운영 시스템을 제공하는 대신 가맹비와 로열티를 받는 사업 구조입니다. 오히려 혼자 개발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인데도, 초반 반응이 잠깐 반짝하고 사그라들었습니다. 주변에 치킨집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상권 내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입니다. 선배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 덕에 배달 수요가 폭발하면서 간신히 고비를 넘겼습니다. 운이 따라준 거라고 본인도 인정했습니다.

국내 자영업자 수는 약 550만 명에 달하고, 음식점업의 1년 이내 폐업률은 약 20%에 이릅니다(출처: 통계청). 드라마가 성공을 너무 쉽게 보여준 건 아닌지,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만든 연대의 힘

이 드라마에서 제가 집중했던 건 사업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세 사람의 조합이었습니다. 안전한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최고는 추진력이 있지만 요리 실력이 없고, 서보아는 웹툰지망생인 만큼 감각이 있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앤드류 강은 미슐랭 스리스타 출신의 실력을 갖췄지만 트라우마로 손을 떨어 주방에 서지 못합니다.

여기서 미슐랭 스리스타란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 기관인 미슐랭 가이드가 부여하는 최고 등급으로,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수준의 요리 실력을 공인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이 트라우마 하나 때문에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설정이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세 사람의 관계를 드라마 용어로 보면 상호보완적 팀 시너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상호보완적 팀 시너지란 각자의 약점을 서로의 강점이 채워주면서 혼자일 때보다 높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잘 구현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고, 제가 보기에 드라마의 진짜 핵심 메시지는 치킨이 아니라 이 연대 자체였습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잘하는 부분을 상호보완하여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끝내고 부서 사람들 다 같이 치킨집에 가서 시원한 맥주나 콜라와 함께 치킨을 먹는 순간은 정말 이로 말할 수 없이 보람됩니다.

자영업 현실 생존

드라마에서 창업은 자아실현의 언어로 포장됩니다. 안전한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최고의 선택은 용기 있는 결단처럼 묘사됩니다. 일반적으로 창업은 자유와 도전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시각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선배가 치킨집에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던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이 꼭 치킨 같다고, 뜨거운 기름에 바삭 튀겨지는 과정은 괴롭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보람된 맛이 있다고요. 근사한 말이었지만, 그 말 뒤에는 "그래도 너는 절대 자영업 하지 마"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 붙었습니다.

창업 초기에 창업자가 감당해야 하는 현금 흐름 관리란 매달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 최고가 마이너스 상태에서도 버티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이 현금 흐름이 막히는 순간 가게는 문을 닫습니다. 드라마처럼 3개월만 기다려달라고 엄마를 설득하는 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걸 의미합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될 때, 작은 공간을 빌려 배달 전문으로 샌드위치를 팔아보는 꿈입니다. 소규모 배달 전문점이란 홀 운영 없이 배달 플랫폼만을 통해 주문을 받는 형태로, 임대 비용과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창업 방식입니다.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그 상상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연료가 되기도 합니다.

서보아는 치킨집 전단지를 망치려고 그린 만화가 오히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웹툰 연재 제안까지 받게 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걸 보고 어떤 분들은 너무 작위적이라고 하실 수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말이 뭔지 보였습니다. 빗나간 곳에서 재능이 발현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혼자 방에 박혀 있는 것보다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뭔가가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청년층 취업자 중 희망 직종과 실제 직종이 일치하는 비율은 40% 미만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나머지 60%가 넘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과 하는 일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간극 속에서 서보아처럼 우연히 자신의 길을 다시 찾는 일이 드라마에서만큼 극적이진 않더라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최고의 치킨은 자영업 성공 스토리로 읽히지만, 저는 이 드라마를 각자 멈춰 있던 세 사람이 서로 덕분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봤습니다. 창업의 낭만은 현실과 다를 수 있지만, 함께하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메시지는 공감이 갔습니다. 드라마를 다 본 후 샌드위치 가게 상상을 다시 꺼내봤다면, 이 드라마는 제게 충분히 제 몫을 한 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rQWjhyfX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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