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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더랜드 (감정노동, 성실함, 리더십)

by eunhaji 2026. 5. 6.

 

캐릭터의 뻔한 설정에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내용은 멋지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보다 보니 제 직장 생활이 자꾸 겹쳐 보이는 겁니다. 특히 웃어야 할 때 웃고, 참아야 할 때 참아야 하는 장면들에서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킹더랜드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포장지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안을 뜯어보면 꽤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감정노동

호텔리어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의 대표적인 직업입니다. 여기서 감정노동이란 자신의 실제 감정과 무관하게 직무 수행을 위해 특정 감정을 표현하거나 억제해야 하는 노동 형태를 말합니다. 미국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가 1983년 처음 개념화한 이후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사랑은 진상 손님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화장실에서 상무님 핸드폰을 찾아달라는 지시도 군말 없이 수행합니다.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생겨도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생방송 도중 동료가 자리를 이탈해도 혼자 방송 사고를 수습합니다. 저도 평범한 직장에서 상사 눈치 보는 게 고단할 때가 많은데, 이걸 처음 보는 손님 수백 명 앞에서 매 순간 해낸다는 건 솔직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오히려 공감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실에서 근무하는 호텔리어 분들에게 한마디 건네더라도 친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나마 사랑이 인간적으로 보였던 건 퇴근 후 친구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이며 속상했던 손님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집에서 자극적인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장면이었습니다. 저 또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저녁과 숙제를 봐주고 잠자리까지 지켜주다 집안 모든 일이 끝나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머릿속을 비웁니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받습니다. 사랑이의 탈출구의 모양이 누구나 비슷하구나 싶어서 그 장면만큼은 마음이 편했습니다. 

오평화의 성실함

저는 제 아이들에게 늘 "성실하면 무조건 된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 말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평화 때문입니다. 오평화는 항공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매출을 올렸지만, 승진은 후배에게 돌아갑니다.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라인'도 없었던 탓입니다. 이 장면이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조직 안에서 성과 외에도 사내 정치(Office Politics)가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여기서 사내 정치란 조직 내에서 공식적인 업무 능력과 별개로 인간관계, 정보 장악, 인상 관리 등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행동 방식을 말합니다.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한 조직의 현실이 아프고도 슬펐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결말은 달랐습니다. 오평화는 결국 사무장으로 승진하며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입증합니다. 운과 요령으로 앞서가는 사람보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제 지론과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실함이 무조건 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도 성실함의 일부입니다. 오평화가 그걸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건 아니구나를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킹더랜드에서 제가 가장 공감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오평화입니다. 주인공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캐릭터였고, 그렇기에 더 진하게 남았습니다.

가치 있는 리더십

킹더랜드에서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건 구원과 구하란의 경영 철학입니다. 이 두 인물은 같은 조직을 두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구원은 직원을 VIP로 대우하면 손님도 자연스럽게 VIP가 된다고 믿습니다. 직원 복지, 인센티브 여행, 100주년 행사에서 진짜 은인들을 무대로 불러내는 방식 모두 같은 철학에서 나옵니다. 반면 하란은 인건비 절감, 효율, 이익을 최우선에 놓습니다. 조직 구성원을 파트너가 아닌 소모품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결말에서 하란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 건 그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저 역시 직장과 가정에서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을 우선해 온 사람입니다. 특히 아이들의 훈육에 있어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나 선을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들을 얘기할 때에는 명확하게 알려줘야 아이들도 학교에서 실수를 줄이며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화란의 모습이 옳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기업 오너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하란처럼 냉정한 현실 판단도, 구원처럼 따뜻한 공감 능력도 함께 있어야 조직이 안전하게 성장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그래서 가장 가치 있는 리더십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구원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란의 날카로운 판단력에 흔들리거나, 아버지에게 배움을 구하는 장면이 더 있었다면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 됐을 겁니다. 캔디형 여주인공과 재벌 2세 남주인공이라는 구도 자체가 주는 피로감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킹더랜드는 지상파 최고 시청률 13.8%,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7위를 기록했고, 넷플릭스 글로벌 통합 1위를 달성한 작품입니다. 그 인기가 단순히 달달한 로맨스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오평화로 살아봤고, 감정을 숨긴 채 웃어야 했던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앞으로는 효율보다 조금 더 자부심과 진심을 전달하는 쪽으로 노력해보려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kz0m_W1U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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