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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셰프 (음식 철학, 폭군 이헌, 타임슬립)

by eunhaji 2026. 5. 29.

 

미슐랭 3 스타 셰프가 조선 시대 연산군 앞에서 수라를 올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면서 뻔한 타임슬립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웃으면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열고, 목숨을 지키고, 심지어 역사의 흐름까지 바꾸는 이야기로 풍성한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음식 철학

드라마의 주인공 연지영은 프랑스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타임슬립(time slip), 즉 현재에서 과거로 순간 이동하는 현상을 경험하고 조선 시대에 떨어집니다. 타임슬립이란 시공간을 초월해 다른 시대로 이동하는 판타지 설정을 말합니다. 그 혼란 속에서 그녀를 살린 건 권력도 인맥도 아닌, 요리 실력 하나였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까다로운 권세가 임 부자 앞에서 음식을 선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지영은 수비드(Sous Vide) 기법으로 질긴 소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냈습니다. 수비드란 식재료를 진공 포장한 뒤 낮은 온도의 물에 장시간 가열하는 조리 기법으로, 고기 내부의 미오신(Myosin) 단백질이 반응하면서 질긴 육질을 극적으로 부드럽게 바꿔줍니다. 미오신이란 근육 섬유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하나로, 특정 온도 구간에서 변성되면 고기가 연해지는 원리를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왕대비 앞에서의 경합에서는 재첩을 된장국에 넣어 청량한 감칠맛을 살려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표고버섯의 구아닐산, 멸치의 이노신산, 새우젓의 글루탐산을 조합해 실제로 이 원리를 풀어냈고, 덕분에 저도 과학적 원리가 깔린 요리 이야기를 보며 꽤 진지하게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속 음식 표현 방식도 독특했습니다. 한 입 먹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춤을 추는 느낌, 혀에서 칼춤을 추는 듯한 맛 같은 과장된 묘사가 계속 나오는데, 저는 예전에 읽었던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연출이 딱 떠올랐습니다. 과장이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연출이 오히려 음식에 대한 감각적 묘사를 극대화해서 진짜 먹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했다고 봅니다. 유치한 게 아니라, 영리한 연출이었습니다.

폭군 이헌 = 회사 대표

저는 회사에서 대표 앞에 서면 죄도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숨도 제대로 못 쉰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드라마 속 이헌은 배신과 독살의 위협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폭군의 모습으로 굳어진 인물입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그 모습이 어딘가 우리 대표님과 겹쳐 보였습니다. 매출이 부진한 달에는 사소한 실수에도 날이 서고, 그게 외부 경쟁사에게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방어 심리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하나로 회사 대표님의 행동까지 이해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연산군은 실제 조선 시대의 폭군으로 기록된 왕입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연산군은 재위 기간 중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대규모 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신하를 숙청하고,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드라마는 이 역사적 배경 위에 가상의 서사를 얹었는데, 단순한 악인이 아닌 상처받은 인간으로 이헌을 그려낸 점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이거였습니다. 만약 지금의 내가 조선 시대에 떨어진다면 단 하루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권력도, 배경도,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세계에서 그녀를 지킨 건 오직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었습니다. 지영을 보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지금의 내 무기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도 출중하게 잘하는 게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게 솔직히 좀 씁쓸했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만 압도적으로 잘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지영이 몸으로 보여줬는데, 제 경우엔 그 한 가지가 아직 없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연다는 건 저도 직접 느껴본 일입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날이나 반대로 뭔가 잘 풀린 날, 저는 어김없이 맛있는 걸 찾아 나섭니다. 음식이 주는 위로와 행복이 삶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음식에 대한 저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조선으로 타임슬립

전 지영이처럼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꼭 특출나게 잘하는 재능이 있어야만 살수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아이들을 키운 경험으로 삶을 더 지혜롭고 안전하게 잘 살아남을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단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글을 읽고, 쓰고, 연산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날 것 입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연산은 더더욱 잘할수 있습니다. 상인들 사이에서 저는 물품 계산을 척척 해내거나 글을 쓰거나 장부 정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관리직으로 취업해서 돈을 벌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선생님으로 취업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운 경험과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조선시대의 아이들에게 글씨, 수학 더 나아가 기본적인 영어까지 가르쳐서 대한민국에 인재를 키우는 데 협조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수도 있습니다. 특히 회초리를 드는 시대이기에 저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따듯하게 보듬어주는 스승으로 모범적인 어른이 되어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뭐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어도 조선으로 가면 엄청난 환영을 받게 되지 않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저는 특별한 재능이 없이 하루에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풀어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똑같은 일상이 지겹지 않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이런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함이 더 큽니다. 물론 재능 하나쯔음 가지고 싶긴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 힘이 특별함을 믿고 즐겁게 오늘을 살아가려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ExWTRpdT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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