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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애틋하게(계절, 영옥, 행복)

by eunhaji 2026. 6. 14.

애틋한 계절

가끔은 유난히 가슴을 시려 오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김우빈, 수지 씨가 나왔던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렇습니다. 방영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문득 찬 바람이 불거나 마음이 쓸쓸한 날에는 이 드라마의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영상미와 두 주인공의 애절한 눈빛이 눈앞에 아른거리곤 합니다. 극 중 시한부 판정을 받은 톱스타 신준영과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다큐 PD 노을의 사랑 이야기는 볼 때마다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사실 처음 이 드라마를 본방으로 시청할 때는 "왜 이렇게 주인공들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가혹하게만 굴까" 하는 원망 섞인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비극적인 설정들이 겹치다 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지치고, "꼭 저렇게까지 처절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인생의 여러 굽이를 넘기며 다시 마주한 이 작품은 단순한 신파극을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묻는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드라마 속 준영이는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알면서도 남은 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주변을 정리해 나갑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비현실적인 드라마 설정이라고만 치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삶도 언제 어느 순간에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당연하게 올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드라마는 어쩌면 오늘이라는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갈망하던 기적 같은 시간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준영이와 을이의 애틋함이 제 마음에 깊이 남은 이유도, 결국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닮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영옥이라면

드라마를 보며 가장 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인물은 준영이의 어머니, 영옥이었습니다. 평생을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는데, 그 귀한 아들이 검사가 되라는 엄마의 꿈을 저버리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영옥이가 느낀 배신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과 오랜 시간 등 돌리고 모질게 대하는 영옥이를 보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만약 제가 영옥이의 처지였다면 저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저는 감히 영옥이처럼 모질게 아들을 외면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 바른길, 혹은 탄탄대로가 보장된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은 이 세상 모든 부모가 똑같을 것입니다. 제 아이들이 제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가슴은 무너져 내릴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품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그 순간, 마음을 추스르고 그 선택을 존중해 주려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검사가 아니면 어떠니. 네가 행복하고 네가 빛날 수 있는 길이라면 엄마가 너의 가장 큰 팬이 되어줄게" 하고 안아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식의 인생은 결국 자식의 것이고, 부모는 그 여정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그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시한부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영옥이가 흘린 피눈물과 후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등 돌리고 보낸 그 아까운 시간들이 얼마나 한스러웠을까요. 저는 자식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매 순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영옥이를 보며 깊이 다짐했습니다.

평범한 행복

드라마 속 절절한 이별과 아픔을 현실로 가져와 보면, 지금 제 곁에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매일 아침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직장에서 쏟아지는 업무와 씨름하다 보면 지치고 짜증이 날 때도 많습니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회사 생활에 한숨을 쉬며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하고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퇴근길 마트에서 저녁 거리를 사 들고 집에 들어섰을 때, 저를 반겨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다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다정다감하게 언제나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며 감정의 중심을 잡아주는 남편의 든든한 존재감, 그리고 이제 제법 머리가 커서 투덜거리면서도 엄마 품으로 파고드는 첫째 아이와, 아직은 마냥 귀엽고 천진난만한 둘째 아이의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질 때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아무리 치이고 힘들었어도, 이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찌개 하나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 그 시간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주인공들은 그토록 원해도 가지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을, 저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제 자리에 있어 주는 것, 남편과 함께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거창한 성공이나 대단한 부귀영화가 아니더라도, 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소중한 이들과 눈을 맞추고 온기를 나누는 이 평범한 하루하루를 더욱 함부로 대하지 않고 기쁘게 채워나가야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3KUHgNXHYc&t=3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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